[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인허가에서 나타난 의료 인공지능(AI) 기술 성능이 실사용에선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다는 의료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가 나왔다.
특히 의료AI 기술을 가장 많이 접하는 국내 영상의학 전문가들의 지적이란 점에서 뼈아프다.
이에 전문가들은 최근 정부가 실시한 선진입의료기술 규제 완화를 두고 의료 질 하락을 우려했다.
대한영상의학회는 17일 가톨릭의과대학 의생명산업연구원에서 '진단보조 AI의 적절한 적용'에 대한 포럼을 개최했다.
◆ AI 통한 진단 일반화, 현재로선 한계
우선 영상의학회 박성호(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편집이사는 현재로선 진단보조 AI가 의료 질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밝혔다.
박 이사는 "인허가 때 의료AI 성능이 진료 현장에서 사용할 때와 같은 성능이 될 거란 보장이 없다"면서 "근본적으로 AI가 지닌 자료 의존성 때문에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자료 의존성(Data Dependence)'이란 학습에 사용된 자료와 동일 또는 유사한 데이터에선 잘 작동하나 데이터가 달라지면 작동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병원마다 진단 환경이 다르고 환자 상태 또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의료기기 인허가 때 AI 성능이 실제 의료현장에선 그대로 재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례로 그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병원 연구 사례를 제시했다. 위스콘신 대학병원은 미국 FDA에서 의료기기로 허가 받은 경추 골절 CT AI 진단보조 솔루션을 두고 환자 1904명을 대상으로 성능을 다시 확인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해당 CT AI 진단 솔루션은 민감도 91.7%, 특이도 88.6%로 우수한 성능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실제 진단에선 민감도가 54.9%에 그쳤다.
국내 사례도 제시했다. 흉부 엑스레이에서 결절을 찾아내는 국산 한 AI 진단보조 솔루션의 경우 식약처 허가 당시 AUROC(Area Under ROC Curve) 값은 0.994였다.
하지만 고려대 건강검진센터에서 347명을 대상으로 성능을 확인해 본 결과 AUROC 값은 0.648이었다.
박 이사는 "심지어 한 병원 내에서도 의료진, 시기에 따라 의료 데이터가 달라질 정도로 AI는 높은 이질성이 있기 마련"이라며 "자료 의존성이 있는 AI 특성과 맞물리게 되면, 일반화에 있어 근본적인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의료기기 인허가 제도를 통해선 어떤 AI가 어떤 병원이나 상황에서 잘 작동하고 잘 작동하지 않을지를 충분히 확인한다는 건 어렵기 때문"이라며 "최근 대형 언어 모델(LLM)과 같은 생성형 AI 의료기기들이 등장을 하고 있는데, LLM은 평가가 더 부실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부연했다.
◆ 선진입 완화, 비급여 시장서 문제 야기할수도
이러한 측면에서 학회는 정부가 최근 개편한 선진입의료기술 제도 및 새로운 의료기술 시장진입 절차 규제 완화를 두고 우려를 나타냈다.
새로 개편된 선진입의료기술 제도는 비침습적인 신의료기술에 한해 의료현장에 최대 4년간 선진입 해주는 게 골자다. 통상 신의료기술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해야만 임상현장 진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임상평가를 거쳐 식약처 하가를 받았다면, NECA의 임상근거 평가를 유예해줘야 한다는 산업계 요구가 빗발치면서 최대 4년 간 실사용데이터(RWD)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대상 의료기기는 의료AI나 디지털치료제(DTx), 체외진단의료기기다.
이에 대해 최준일 정책연구이사(서울성모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지나치게 기업 친화적이고, 환자와 의료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며 "임상적 근거가 부족한 기술이 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는 구조는 의료의 질을 저하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평가유예 기간 연장은 근거 창출 연구 어려움을 보완하려는 목적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의료기관과 기업 이윤 추구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서준범 영상의학과 교수도 최 이사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서준범 교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험 체계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며 "학회에서 주로 AI 영상진단 보조 기술 관련해 얘기를 했지만, 이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를 잘 정비하지 않으면, 비급여 시장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산업 문제 역시 간과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의료계와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의 근거 창출을 산업계 혼자서 온전히 감당하기란 힘들다는 입장이다.
서 교수는 규제 완화가 나온 배경에 대해 "(산업계가) 혁신 기술을 추구하지만, 국내는 작은 벤처에서 시작한 회사들이 대부분"이라며 "그런 기업들이 신의료기술평가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증거 또는 근거를 마련하는 건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녹색소비자연대 유미화 대표는 임상 근거가 없는 제품에 대한 퇴출 기전은 반드시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유미화 대표는 "사회 변화와 과학기술 발전이란 큰 틀에서 봤을 때 첨단 의료기기에 의존해야겠지만, 신기술 의료기기들이 시장 진입할 때 소비자 부담은 커지기 마련"이라면서 "들어오면 나가는 기능도 있어야 한다. 임상 현장에 쉽게 들어온 만큼,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의료기기에 대한 퇴출 기전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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