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관리 새 패러다임 '임상적 비만병' 도입 필요성 제기

BMI 중심 한계 탈피, 예방적 만성질환 관리 정책 수립 가능성
대한비만학회 "국내 도입 위한 연구·논의 필요"

조후현 기자 (joecho@medipana.com)2025-03-04 20:12

비만학회 이준혁 대회협력정책간사, 박정환 대외협력정책이사, 남가은 보험법제이사. 사진=조후현 기자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비만 관리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임상적 비만병(Clinical obesity)' 개념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임상적 비만병 개념을 국내 실정에 맞게 도입한다면 기존 진단 기준인 체질량지수(BMI, Body Mass Index)가 갖는 한계를 보완, 대다수 만성질환 원인으로 꼽히는 비만을 중심으로 한 예방적 만성질환 관리 정책 수립이 가능해진다는 시각이다.

대한비만학회는 4일 세계비만의 날 정책간담회를 통해 임상적 비만병 개념을 소개하며 국내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상적 비만병은 지난 1월 '란셋 당뇨병·내분비학 위원회(Lancet Diabetes·Endocrinology Commission)'가 제시한 개념이다. 해당 보고서는 의료보건 전문가 58명이 참여한 델파이 과정을 통해 임상적 근거를 토대로 비만 진단·관리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 BMI 중심 평가 방식은 키와 몸무게로만 비만도를 재단해 질병 위험이 과소평가나 과대평가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키와 몸무게가 같다면 내장지방은 적은데 비만으로 분류되거나 내장지방이 많은데 비만으로 분류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임상적 비만병 개념에선 BMI와 함께 DEXA나 생체전기저항분석 등 직접적 체지방 측정법과 허리 둘레나 허리-엉덩이 비율, 허리-신장 비율 등 보조적 인체 계측치를 함께 사용한다.

이후 주요 기관 기능 장애나 일상 활동 제한 여부를 기준으로 임상적 비만병 전단계와 임상적 비만병으로 구분한다. 과도한 체지방이 확인됐지만 뚜렷한 증상이나 기능 저하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전단계, 기능 장애나 일상 활동 제약 같은 임상 증상으로 이어져 삶의 질이 저하된 경우엔 임상적 비만병으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중추신경계 이상 ▲상기도·호흡기 기능 저하 ▲심혈관계 손상 ▲대사 이상 ▲간·신장 기능 저하 ▲생식기·근골격계 장애 ▲일상 활동 제약 등이 포함된다.

이준혁 비만학회 대외협력정책간사는 "이는 환자 체지방 분포, 대사 상태, 심혈관 및 기타 관련 기관 기능 등을 포괄적으로 평가하고 예방적 개입과 생활습관 개선, 약물치료, 수술적 중재까지 아우르는 맞춤형 치료 계획 마련에 도움이 된다"며 "체중 감량이 단순히 숫자상 변화를 넘어 실제 임상 증상 개선과 합병증 예방, 환자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상적 비만병 개념은 조기 진단과 정확한 평가를 통해 개별 환자 상태에 맞는 치료 전략을 세우고 필요하면 적극적 개입으로 합병증을 줄이며 전반적 건강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비만 관리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며 "만성질환으로서 비만병을 치료하고 공정한 치료 접근성 보장과 낙인 완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함께 이뤄진다면 건강한 사회 환경 구축에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정환 비만학회 대외협력정책이사는 임상적 비만병 도입을 통해 국내 만성질환 관리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행 심혈관질환 예방·관리법에서 국가가 지정한 질환은 심근경색 등 심혈관질환, 심장정지, 뇌졸중 등 뇌혈관질환,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등이 있지만 정작 가장 흔한 원인인 비만은 제외된 실정이다. 세계적 만성질환 관리 정책은 비만병 해결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지만, 국내 만성질환 관리 정책은 다른 방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현행 BMI 개념으로는 비만병 중심 만성질환 관리 정책 수립도 어렵다. 비만병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정책 효율성이 낮아질 수 있고, 예방·관리 주체도 개인인지 국가인지 논란이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상적 비만병 개념은 다수 만성질환 원인인 비만을 중심으로 한 만성질환 관리 정책 수립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대외협력정책이사는 "임상적 비만병을 도입한다면 대상자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지고, 질병 개념이 포함돼 있어 예방·관리 주체 논란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 도입을 위해선 논의와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남가은 비만학회 보험법제이사는 임상적 비만병 도입을 위해선 국내 연구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지금까지 비만 역학 관련 국가 차원 조사는 주로 BMI 기준으로 이뤄져 제한적이며, 비만 관련 데이터 통합적 관리 체계는 미흡하고, 비만 임상적 경과와 합병증 발생에 대한 장기적 코호트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비만 진료·치료에 대한 보험급여 적용이 이뤄지지 않아 건강보험 청구자료를 활용한 역학 연구나 치료 패턴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근본적 제약도 존재하는 실정이다.

남 보험법제이사는 임상적 비만병 개념에 근거해 대사적 건강상태와 합병증 유무를 고려한 분류 체계 개발과 보고 시스템 구축, 정기적 국가 단위 실태조사, 건강보험 데이터와 임상 데이터를 연계한 비만 빅데이터 구축 등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인프라 역시 지역 일차의료 중심 비만 관리 시스템 확립과 비만 관리 전문 의료인력·협력 체계, 의료기관-지역사회 연계 시스템 등 비만 관리 전달체계 구축과 의료기관-정부-지역사회 자원 연계 통합적 비만 관리 플랫폼 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남 보험법제이사는 "장벽을 극복하고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 주도 정책적 지원, 의료계 전문성 강화, 학계 연구 확대 및 다학제적 접근 강화, 민간-지역사회 협력을 통한 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며 "비만을 만성질환으로 인식하는 패러다임 전환과 함께 예방에서 치료 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체계적 접근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임상적 비만병 치료환경 개선을 위해 종합 법률 제정을 기반으로 전문가와 보건당국이 협력해 장기적 비만 관리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비만 진료·치료에 건강보험 적용과 행정적 지원을 통해 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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