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형사처벌법', 의사 특례 논란‥시민·환자단체 반발

의료사고 피해자 및 유족들이 아닌 의사에 초점 맞춘 특혜 거부
의료인이 과도하게 형사처벌 및 수사받는다는 근거 부족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3-05 11:54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필수의료 활성화를 목적으로 의료진의 소송 부담을 완화하려는 '의료사고 안전망' 법제화 추진에 시민·환자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명 '의료사고 형사처벌법'(가칭)이 특정 직업군에 대한 과도한 특혜라는 지적이다.

지금껏 환자단체, 소비자단체, 의료사고 피해자 및 유족들은 의료사고 발생 시 의사로부터 설명을 듣거나 사과를 받지 못하는 현실과 의료사고 입증의 어려움, 소송 비용 부담 등을 호소해왔다.

그런데 이들의 요구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를 골자로 한 특례법이 추진되는 것에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5일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시민사회 입장 발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단체에 따르면, 가칭 '의료사고 형사처벌법'은 단순 과실로 인해 필수의료 관련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 경상해 또는 중상해일 때 의료사고심의위원회 결과에 따라 불기소 처분 특례 적용 ▲ 사망 시 유족 전원의 동의가 있을 경우 형사처벌 면제(반의사불벌죄 적용) ▲ 유족 동의와 관계없이 임의적으로 형을 감면하는 조항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날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소속 박호균·이정민 변호사는 의사에만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 규정을 적용하지 않으려는 것은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고 꼬집었다.

박호균 변호사는 "이 법안은 의료사고 피해자들의 전폭적인 양보를 전제하는 것인데, 정부는 국민에게 객관적이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의료인들에게 특혜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므로 향후 적지 않은 논란이 예측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형사법 체계에 맞지 않고 평등원칙 위반 등 피해자 보호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나친 특혜를 부여하는 것이므로, 정부의 정책 혹은 법안 방향은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변호인은 필수의료행위라는 개념으로 헌법 위반을 피할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해, 필수의료행위라는 것은 모호한 추상적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가령 일반적으로 필수분야가 아니라고 여기는 성형외과, 피부과의 경우에도 기형을 교정하는 각종 수술이 시행되고 있고, 흑색종이라는 피부과 종양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질환이다.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도 필수의료행위 보다 중요한 의료행위가 적지 않다고 해석된다.

반면 소위 필수의료 분야라고 불리는 산부인과, 외과, 소아과, 흉부외과 분야의 모든 의료행위에 대해 일률적으로 형사처벌을 면제해 줘야 할 정도의 분야로 보기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변호인은 의료인을 과도하게 형사처벌 하거나, 과도하게 수사하고 있다는 전제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바라봤다.

박 변호인은 "의료인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 및 수사 관련 자료는 없다. 오히려 일반적인 사람들의 형사범죄 영역 보다 의료인의 경우 관대한 수사와 처벌을 하고 있다는 것이 국민의 감정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가 특례법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의료인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 및 수사 관련 자료를 먼저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변호인은 필수분야 진료과 의사 수가 부족한 이유는 미용·성형 등 비필수 분야의 의사들이 수입, 근무 조건에서 더 유리하기 때문에, 비필수 분야로 이동한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변호사는 "전문의 과정을 밟지 않더라도 미용·성형 시술 분야에서 일하는 의사나, 필수의료 분야의 전문의 과정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비급여 항목의 진료를 많이 할수록 수입이 극대화되는 구조가 오랫동안 고착화돼 왔다"고 말했다.

그의 실무상 경험에 의하면, 의료사고 관련 형사책임을 무겁게 진 경우는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가 아니라, 대부분 비필수 분야, 미용·성형의료 영역에서 사고를 초래한 의사들이었다.

이날 변호인들은 업무상 과실로 인해 환자가 피해를 입었을 경우, 의료인의 면허를 규제할 수 없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이정민 변호사는 "반복적인 의료사고로 환자를 사상케 하더라도 의사면허 취소 규정이 없는 등 피해자 보호, 의료사고 억제를 위한 정책이나 법안 추진 노력이 필요하다"며 "업무상과실치사상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의사에 대해 면허 취소나 정지 등의 규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단체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고위험 필요의료 진료과 의사 중에서 실제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는 극히 적고, 금고 이상의 중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환자단체는 사망 의료사고 관련해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입법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는 점에서 절대 허용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환연은 정부와 국회 측에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례 관련 제도와 입법이 아닌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이 울분을 해소할 수 있도록 의료사고 설명의무, 의료사고 관련 유감 표시 증거능력 배제, 의료사고 피해자 트라우마센터 설치, 입증책임 부담 완화를 위한 입법부터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안 대표는 "이러한 노력이 우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팩트도 아닌 과도한 사법 리스크를 이유로 의료사고 형사처벌 특권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의료도 공공재 성격을 띄기 때문에, 의료사고 발생 시 법조 지원을 강화하고 책임보험료나 손해배상금을 공적 차원에서 국가가 지원하는 방법이 제안됐다.

안 대표는 "고위험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가 동네의원을 개원하지 않고 병원급 이상의 의료기관에서 소명감 갖고 진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재정을 투입하고 근무여건 개선, 의료사고 발생 시 법조 지원 강화, 책임보험료나 손해배상금을 공적 차원에서 국가가 지원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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