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역의료 강화 방안

이주열 교수(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대학혁신지원사업단장)

메디파나 기자2025-03-17 06:00

정부는 지역의료 공백과 필수의료 의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의료개혁을 시작했다. 그런데 의료전달체계, 지불제도, 전공의 수련환경, 환자 이송체계 등 의료시스템과 관련된 정책은 뒤로 미루고, 2천명 의대 증원을 군사작전 하듯이 발표하면서 의정 갈등이 발생해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분야는 만신창이가 돼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경험 및 지식이 부족해 순진하게 생각하는 것을 나이브(naive)라고 표현하는데, 정부가 추진한 의료개혁이 이런 수준인 것 같다. 

지난 7일에는 교육부가 의대생 3월 수업복귀를 조건으로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을 지난해에 증원하기 이전 수준인 3,058명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가 1년 넘는 의정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특단의 결정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당일 보건복지부는 붕괴된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해 어떤 언급도 없었다. 의료계에 대한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진료 및 수술이 축소되고 지역의료 현장에서는 환자 핑퐁, 응급실 뺑뺑이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역사적으로 지역의료가 붕괴되기 시작한 출발은 1998년 진료권 폐지와 2004년 KTX 개통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는 의료서비스 질에 대한 기대감에 따라 이동하게 된다. 

현재 본인부담금만 추가로 내면 지역 상관없이 마음대로 진료를 받을 수 있어서 중증 질환뿐만 아니라 가벼운 질환도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그간 수도권 병상 적정 관리시스템 없이 대학병원 분원 설치가 확대돼 병상 수는 대폭 증가됐다. 

지역의료 생태계 약화는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림을 심화시키고 인력난, 환자 감소 등으로 지역 병‧의원 폐업이 발생해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의료서비스 제공도 어렵게 한다. 보건복지부가 책임의료기관 및 전문진료센터 지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예산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의료기관 간 연계‧협력이 미흡해 분절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의료행태는 다양하고 복잡한 여러 요인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반드시 이성적·합리적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 이동과 관련된 정책은 성공하기 쉽지 않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거창한 구호로만 들리는 것은 지역의료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중앙정부 및 관료 중심으로 정책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현재 지역의료 문제는 그간 진료권 폐지, 의료전달체계 붕괴, 중앙정부의 의료자원 배분계획 부재 등이 누적된 결과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특효 정책은 없다. 단계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현실을 순간 이동해서 정책이 추진될 수 있는 미래로 가면 좋겠지만, 이건 불가능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정책이 실현 가능한 여건을 먼저 만든 후에 필요한 정책을 추진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 

중앙정부가 지역의료를 강화하고 회복시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여건조성 과제는 광역단체 시도가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운영 계획을 수립하고 필요한 의료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관련 권한을 주는 것이다. 

지금처럼 중앙정부 중심의 정책결정 방식으로는 지역의료 문제를 꼼꼼히 해결하기 어렵다. 시도는 지역보건법에 따라 4년마다 지역의 보건의료 수요를 파악하고 의사를 포함한 보건의료 인력 계획을 수립하고 있어 지역에 필요한 의료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시도에 설치돼 있는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기능을 강화해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에 필요한 실무를 담당하면 된다. 염려스런 부분은 지방선거 공약에 대학병원 분원 설치, 지방의료원 설립 등이 자주 등장하고 있어 자칫 지역의료 관련 정책들이 정치적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 이런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의료자원 배분 계획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역할은 시도가 수립한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운영 계획의 적절성과 타당성을 평가하고 실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농어촌 지역의 경우 의료기관 부족으로 일차의료서비스 제공도 원활하지 않다. 농어촌에 거주하더라도 양질의 의료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 지금처럼 공중보건의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의료서비스 지속성과 질 향상에 한계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건소-지방의료원- 대학병원 간 협력네트워크를 만들어 방문진료, 환자 이송체계 구축, 의사 인력 순환근무 등이 강화돼야 한다. 특히 지방의료원 운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대학병원과 수련의 과정 공동 운영, 공공임상교수제 정착, 지방의료원 겸임 금지 해제 등 의사 인력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중앙정부가 지방의료원에 법정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차의료 담당의사의 대다수가 전문의이다. 일차의료는 지역사회 중심, 환자 중심, 통합서비스, 지역 포괄케어, 방문진료, 자원연계 등이 중요한데, 대형병원 중심의 전문의 수련과정으로는 일차의료 특성을 경험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전문의 수련과정 중 일정 기간은 보건소, 지방의료원 등 지역의료 현장에서 근무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이 지역의료에 순환적으로 투입되면 의료서비스 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수도권 이외의 시군에서는 의사가 모든 의료기관에서 겸직 진료할 수 있도록 개방형 진료체계를 도입하고, 보건지소를 개방형 공공의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 또한 민간 의료기관 소속 의사가 공공의료기관에서 자유롭게 진료할 수 있는 호주형 공공-민간협업 진료체계 도입을 제안한다.

[기고] 이주열 교수(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서울대학교 보건학박사, 미국 하버드대학교 박사후과정
-서울시 서울의료원 비상임이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평가조정위원회 위원
-전) 국무총리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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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작성시간 : 2025-03-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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