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 '병용요법', 비급여의 벽‥"바뀌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

급여+비급여 약제 병용, 환자 부담 100‥타 제약사 논의 미참여 시 검토 불가능
앞으로도 병용요법 대다수‥"현행 급여 제도 개선하지 않으면 암치료 퇴화"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3-18 05:58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항암제 병용요법이 비급여의 벽에 가로막혔다.

보건복지부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10년 넘게 급여 제도가 변하지 않아 제약업계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병용요법이 허가된 후 환자가 치료를 받으면, 신약뿐만 아니라 기존에 급여로 투여받던 치료제까지 급여가 인정되지 않아 100% 본인 부담이 된다.

게다가 병용 약제 간 제약사가 다른 경우가 대다수다. 이때 한 회사만 단독으로 급여를 신청하면 급여 검토 첫 단계에서부터 재정 분담 협의가 불가능하다. 특히 병용 약제가 위험분담약제일 경우, 기밀 유지 계약으로 인해 경제성 평가 및 재정 영향 분석도 어렵다. 타 제약사가 이 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급여 검토 자체가 진행될 수 없다.

제약업계뿐만 아니라 의료계와 학계에서도 기존 단독요법 중심의 급여 검토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새롭게 등장하는 병용요법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최신 암 치료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질 수 있다는 시각이 강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병용요법에 대한 새로운 급여 제도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지난 17일 열린 ‘병용요법의 암환자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항암제 병용요법의 급여 기준 개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최근 10년간 국내에서 허가된 항암제 병용요법은 생물학적 제제 항암제 47건, 합성신약 항암제 30건 등 총 77건에 달한다.

현재 개발 중인 항암제의 70% 이상이 병용요법으로 연구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치료제 병용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암젠코리아 김민지 이사는 "항암제 병용요법 트렌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급여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환자의 치료 접근성이 저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병용요법 급여를 위한 적절한 ICER 임계값 적용이 제안됐다. 단독요법에 비해 투약 기간이 길어지는 병용요법의 특성을 고려해, 혁신성을 입증한 병용요법에는 기존보다 유연한 ICER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부터 ▲대체 가능한 치료법이 없는 경우 ▲생존 기간 연장 등 의미 있는 임상적 개선이 입증된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신속심사로 허가된 신약 또는 이에 준하는 약제에 대해 탄력적 ICER 적용이 가능해진 만큼, 병용요법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 이사는 "병용요법은 생존 기간 연장에 따라 투약 기간이 늘어나 기존 단독요법보다 투약 비용이 상대적으로 증가한다. 임상적 유용성이 기존보다 개선됐다고 해도 현재 적용되는 ICER 임계값을 만족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기급여 약제와 비급여 신약을 병용할 때의 비용 부담 조정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이사는 "병용요법 허가 시 별도 절차 없이 신약은 비급여 또는 전액 본인 부담으로 하되, 기존에 급여를 받던 약제는 계속 급여를 적용할 수 있도록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질문에 답변하는 복지부 박희연 사무관. 사진=박으뜸 기자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도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복지부 보험약제과 박희연 사무관은 "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현재 실무를 담당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논의 중이다. 개선하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병용요법의 제약사가 다를 경우, 신속하고 합리적인 급여 검토가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와 관련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는 워킹그룹을 구성해 대책을 강구 중이다.

김 이사는 "일관된 규정이나 정책이 마련되면 급여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제약사들이 사전에 대비할 수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며 "병용요법 검토 첫 단계인 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에서 재정 분담 협의를 생략하고, 이후 검토 단계에서 양사가 재정 영향 및 상한 금액을 협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타사가 급여 검토 과정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해당 약제를 비급여 또는 100% 본인 부담으로 설정한 뒤 추후 급여 검토 절차를 진행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박 사무관은 "신약과 신약을 병용하는 경우에는 또 다른 측면의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 급여 중재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검토 중이지만, 제약사별 사정이 있어 강제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토론회는 병용요법 급여 문제 해결을 위해 제약업계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다. 향후 암 치료가 대부분 병용요법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현행 급여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환자의 치료 접근성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병용요법이 좋은 효과를 보인다면 초기부터 적극 활용해 최대한 생존 기간을 늘리는 것이 최근 치료 트렌드"라며 "현재 대부분의 제약사 임상도 병용요법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에서 병용요법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 될 것이다. 이제라도 급여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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