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의사 부족은 의료 제도·정책에 대한 정부 몰이해로 생긴 구조적 모순이 만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따라서 의료에 대한 계획도 없어 의사 추계는 불가능하고, 의료계와 정부가 마주앉아도 서로 협상할 도구조차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은 10일 의료정책연구원 의료정책포럼 발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 원장은 먼저 우리나라 의료 제도와 정책이 모순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건강보험이란 의료보장제도를 실행하고 있어 규범적 접근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하나, 미국형 시장주의 의료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도와 정책 사이 모순은 문제를 파생시켰고, 이는 의사인력 부족으로도 이어졌다.
정부는 건강보험제도 도입 초기 의료자원 부족을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로 메꿨다. 모든 의사는 건강보험 진료를 하도록 강제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의료자원 부족이 해결된 뒤에도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는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이다. 보험제도를 실행할 의료자원 부족이라는 비상상황은 종료됐음에도, 의사를 건강보험에 강제 동원하는 제도는 유지한 것이다.
유럽 등 의료보장제도가 있는 국가에선 건강보험 진료를 하면 정부가 가격을 정한 급여진료만 하며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대신 조세 감면과 같은 비용 지원을 받는다. 반대로 건강보험 진료를 하지 않는 경우 수가를 자율 책정하는 영리기관이 된다.
모순적 한국형 제도 아래 2000년 건강보험 통합이 이뤄졌고, 법적으로 비급여가 인정됐다. 이로 인해 의료기관은 초과이윤을 얻을 수 있게 됐고, 2003년 실손보험이 확산되며 의료기관 영리화가 본격화됐다.
결국 진료과별 의사 수입 격차가 심화됐고, 위험도가 높거나 비급여 진료가 어려운 진료과는 기피하며 특정과 인력부족이 발생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원장은 "의사 부족의 원인은 사회의료보험 원리에 벗어난 정책의 결과"라며 "정부가 특정과 인력부족 원인 분석도 하지 않고 의사 부족으로 치부해 의대정원을 대폭 확대, 의료위기를 자초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철학 없이 모순된 제도와 정책을 운영하다 보니 의료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의료계획 부재로 정확한 의사 부족 추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 원장은 "정부가 의사와 협상하자고 하는데 협상할 때 들고 나갈 도구가 정부도 없고 의사도 없다"며 "의료계획을 한 번도 수립한 적 없는데 있을 리가 있나. 정부가 없는데 개인이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의사 수를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정부가 의료계에 과학적 근거를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대안은 정부가 만드는 것이지 국민에게 가져오라고 할 것이 아니란 지적이다.
이 명예교수는 "대학 졸업할 때 동기들 의사 면허번호가 2만 대였다. 의사가 2만 명이던 그때도 의사 부족이란 말은 쓰지 않았다"면서 "부족은 적정치가 있고 미치지 못한다는 뜻인데, 우리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사가 몇 명인가를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과학적 근거를 요구하는데 대안을 만드는 건 정부가 할 일이지 일반 국민에게 만들어 가져오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봉건주의 시대에도 없던 해괴망측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은혜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는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 발제에 공감하며 혁명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무리한 의대 증원을 시도하며 건강보험제도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핵심 자원인 의사는 정부와 국민에게 영혼을 살해당하며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시각이다.
이 정책이사는 "결국 현 상황은 건강보험 이념과 원칙에 무지한 채 독일식 비영리제도를 미국식으로 영리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라며 "이름만 의료보장이었던 건강보험이 아닌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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