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올해 초 정부가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하며 시작된 의료개혁은 의료계에 전례 없는 파장을 가져왔다.
의정갈등 파장 중심에 선 직역은 젊은 의사로 불리는 전공의와 미래 의료인이 될 의대생이다. 특히 빅5를 비롯한 수련병원에서 핵심인력으로 역할하던 전공의는 의료계에 더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부는 수장인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사태로 탄핵됐음에도 의료개혁 추진 의지를 놓지 않으면서 의정갈등과 의료계 혼란은 해를 넘기는 모습이다.
◆ 예고된 반발, 준비된 발표…끝내 떠난 전공의
의대정원 증원은 정부와 의료계가 지난해부터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수차례 논의를 시도했지만 합의는 물론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내지 못한 사안이었다.
의대정원 증원은 의료계, 그중에서도 젊은 의사에게는 가장 민감한 현안으로 강행할 경우 거센 반발이 예고된 상태였다. 실제 의대정원 증원 가능성이 확산된 지난 1월,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단체행동 참여 여부를 조사하며 동력을 모았다.
반면 정부도 의료계 반발에 대비했다. 지난 2020년에도 의대정원 증원을 추진했으나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 반발로 무산된 바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대전협 단체행동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즉각 '법과 원칙에 따른 모든 조치를 엄정하게 집행할 계획'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증원 발표를 앞둔 2월 초엔 수련병원장 비대면 간담회를 실시하고, 파업 시 업무개시명령을 위한 병원별 전담팀을 꾸리면서 선제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2월 6일, 의대정원 2000명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확정 발표됐고, 강대강 대치 끝에 전공의들은 병원을 떠나기 시작했다. 개별 사직으로 시작된 흐름은 급속도로 퍼졌다. 정부는 병원엔 사직서 수리금지명령을, 전공의에겐 업무개시명령을 각각 발동하고 검경을 동원해 구속수사 방침까지 엄포를 놨으나 사직율은 늘어만 갔다. 3월이 되자 사직서를 제출하고 출근하지 않는 전공의 비율은 90%를 넘겼다.
◆ 4개월 지속한 대치 끝 일단락…환자 피해, 수련체계 후유증만
대다수 전공의가 사직했지만 정부와 의료계는 공방을 이어갔다.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하며 업무개시명령 위반 전공의 절반가량인 4900명을 대상으로 면허정지 사전통지서를 발송했다. 이후엔 3월 복귀를 호소하며 다시 '유연한 처분'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4월엔 의대정원 증원 자율모집을 허용했다. 희망 대학은 증원 인원을 50~100% 사이에서 자율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방침이었다. 이를 통해 의대 증원 규모는 1500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이는 오히려 의료계 반발을 샀다. 2000명 증원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결정이란 주장을 스스로 뒤엎었다는 지적이었다.
전공의를 향한 압박도 회유도 통하지 않자 정부는 사직서 수리금지명령 철회를 결정했다. 당시 정부는 '사직서 수리 허용이 복귀에 도움이 될 것이란 현장 의견에 따라 사회적 비판을 각오하고 의료계 요청을 받아들인 조치'라고 설명했다.
전공의 사직부터 사직서 수리까지 이어진 의정갈등은 진전 없이 후유증만 남았다. 환자들은 전과 같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상급 병원에서 거절당하거나 소규모 병원으로 몰려나는 등 피해를 입었지만, 이후에도 치료를 지속해야 함에 따라 정부에도 의료계에도 기대지 못한 채 속앓이를 이어오고 있다.
수련체계 역시 무너지고 있다. 의료현장 빈자리를 채우던 의대 교수들은 전엔 살릴 수 있었을 환자를 살릴 수 없게 된 현실에 절망감을 토로하며 사직하거나, 전공의 복귀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암담함을 느낀 채 현장을 떠나고 있다.
◆ 가을턴도 내년 1년차도 전멸 수준…해 넘기는 의정갈등
정부는 채찍과 당근을 병행하며 전공의 복귀를 유도했지만, 올해 말까지 끝내 효과를 거두진 못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가을턴이라 불리는 지난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앞서 '하반기 모집에 응시하지 않을 경우 내년 3월 복귀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1년 내 재지원 제한이나 모집과목 제한 등 수련특례는 가을턴으로 복귀하는 경우에 한해 적용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수련병원 교수들도 '자식을 두고 양자를 받을 수 없다'며 반발했고, 두 차례에 걸친 가을턴 모집결과는 125명에 그쳤다.
사직서가 수리되며 전공의들은 수련병원 복귀가 아닌 의료기관 취업을 선택하는 모습이다. 실제 지난 10월 기준 사직 전공의 절반가량이 개원가나 병원, 종합병원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달 9일 마감된 내년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모집에서 모집정원 3594명 대비 314명만 지원하며 8% 지원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100명을 뽑는데 8명만 지원한 셈이다. 여전한 의정갈등 국면 속에서 지난 3일 벌어진 비상계엄 중 발표된 포고령에 '미복귀 의료인을 처단한다'는 문구가 포함된 것은 정부 노력에 '독'이 됐다.
이제 남은 건 내년 1월 중순께 진행되는 레지던트 상급년차 모집이지만, 가을턴이나 1년차 모집과 같은 양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전공의 복귀를 위해선 수련특례가 필요하지만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데다, 윤 대통령 탄핵으로 의료개혁이 동력을 잃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다.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