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의정갈등으로 전공의가 떠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규 인원 모집에 나섰던 산부인과는 참담한 결과를 마주해야 했다.
2025년도 산부인과 전공의(레지던트 1년차) 188명 모집에 단 1명만이 지원한 것이다. 이마저도 분만을 선택하지 않고 불임 분야 등 사법리스크가 적은 쪽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인력난에 힘들어했던 산부인과에 의정갈등이라는 폭탄이 쏘아지면서 필수과 기피현상이 더 악화된 모양새다. 특히 현재의 분만 인력 부족상황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인구 절벽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출산장려정책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이처럼 산부인과 인력난 해소가 절실한 상황에서,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서는 사법리스크 완화와 저수가 정상화 등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고 있다.
이에 대한산부인과학회 김암 회장<사진>을 만나 산부인과 의사들의 애로점과 인력 확대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와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제언을 들어봤다.
◆ 사법리스크 해결돼야…신규 인력 없이 고령화 지속
김암 회장은 인터뷰 첫 머리에서부터 "자녀가 산부인과 하겠다고 하면 시킬 것이냐"라고 물었다.
대답을 못하고 있던 기자에게 김암 회장은 "산부인과에 의료사고 한 건 터지면 성형외과 관련 사고 10건 보다 많은 배상을 해야 한다. 사고 하나 발생하면 15억원, 16억원 배상 판결이 난다.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하겠나"라고 반문했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의료분쟁조정원의 불가항력의료사고 통계를 보면, 총 77건 중 산모 사망 29건, 태아 사망 11건, 신생아 사망 27건, 신생아 뇌성마비가 10건 발생했다. 이는 분만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의 심각성과 함게 명확한 과실 판정 기준의 부재로 인한 의료 분쟁의 빈번함을 시사하고 있다.
김암 회장은 사법리스크에 더해 타과에 비해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진통하는 동안 지켜봐야 한다. 주말도, 야간도, 휴일도 제대로 쉴 수 없다. 인력이 많다면 당직순서가 빨리오지 않겠지만 늘 부족했기에 당직도 자주 서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찾는 젊은 사람들이 하려고 하겠나. 아무도 안하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인력난이 심화된 근본 원인인 '사법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을 불식시킬 수 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하지만, 지속된 외면 속에서 인력 부족은 예견된 상황이라는 관점도 내놨다.
김 회장은 "봉급 조금 올려주고 분만 수가 조금 올려주는 것 가지고 인력난이 해결될 수 없다. 법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없이 얘기했지만 십 수 년 동안 해결된 것이 없다. 기껏 된 것이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 3000만원 주던 것을 최대 3억원으로 상향한 것이다. 그렇게 됐다고 해도 분만할 사람이 없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법정에서 분만과정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한 배상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판례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해 현실적인 금액 조정 필요성을 시사했다.
또, 일본이나 대만의 경우처럼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암 회장은 "대만, 일본, 우리나라는 분만율이 떨어지고 있고, 여러 가지 상황이 비슷하다. 그래서 같이 회의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먼저 행동에 나섰다. 국가에서 분만과 관련한 사고에 대해 다 보상해준다. 이를 통해 산과 의사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을 보고 대만도 100% 국가에서 비용을 책임지고 있다"고 했다.
일본의 산과 무과실 보상제도는 분만 중 발생한 뇌성마비에 대해 의사의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보상하고 있다. 산모가 3만엔의 보험료를 납입하고, 신생아가 뇌성마비로 판정될 경우 의료 과실과 무관하게 3000만엔을 지급한다.
김암 회장은 "일본이나 대만처럼 분만 과정 중 발생한 사망사고나 장애 발생 등과 관련한 보상비용을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이상 출산정책을 아무리 펼치더라도 분만이 일어나기가 어렵다. 일어난다고 해도 부족한 의사수로 인해 사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짚었다.
출산 장려 정책을 펼치려면 분만을 담당할 의사들이 함께 양성돼야 한다는 시각이다. 그런데 현재는 분만 의사도 부족한 상황에서 더 많은 신경을 쏟아야 하는 고연령의 고위험 산모가 늘고 있다. 더욱이 현장 의사 연령층도 고령화추세다.
김암 회장은 "산부인과 의사 입장에서 고령 산모는 고위험 산모이며, 중환자 대상이 자꾸 늘어나고 있어서 아주 아찔아찔하다"며 여기에 "신규 인력 유입 없이 기존 의사들은 고령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응급사태에 대처하는 게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고위험 산모는 더 늘어날 것이고, 이로 인해 의사들의 부담감은 더 커질 것이다. 이제는 아기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면서 사명감을 가지고 사법리스크를 감당하라고 하면 안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용단이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 의료 취약지 임산부 지원…안전·신속·편안한 이송방안이 현실적
정부는 의료취약지에 있는 고위험산모를 지원하기 위해 2011년부터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 등의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김암 교수는 해당 정책으론 실효성을 거두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누구나 좋은 의료환경에서 분만하려는 욕구가 있는 만큼, 취약지역 내에서 분만이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것보다 산모가 원하는 병원으로 빠르게 이송해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암 회장는 "제가 '분만 취약지 지원사업' 심사를 한동안 했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관뒀지만 그 당시에는 취약지에 병원설립비용과 인건비 등을 지원해주는 것은 한시적이라고 얘길 했다. 그런데 아무도 귀담아듣질 않았다. 그리고 사업은 계속됐다. 그러던 중 2021년 5월에 전라북도가 유일하게 분만 취약지에 거주하는 산모에게 교통비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업을 통해 산모들이 큰 병원으로 진찰받으러 갈 때 택시를 불러서 안전하게 타고 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사업 후기를 들어보니, 분만 취약지 근처 병원을 새로 지어서 진료를 받는 것보다 환자분들의 만족도가 컸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도는 2021년 5월 도내 7개 군지역 임산부의 산전 관리와 분만의료 서비스를 지원하고자 '출산취약지역 임산부 이송비 지원 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출산취약지역(완주, 진안, 무주, 장수, 임실, 순창, 부안)에 거주하는 10주 이상부터 분만까지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산전진찰과 분만이송에 필요한 교통비를 지원했다.
김암 회장은 "이 사업이 왜 만족도가 높았는지 살펴보면, 누구나 크고 안전한 병원에서 치료받고 싶어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취약지역에는 병원을 짓고, 장비를 갖추고, 실력을 갖춘 의사, 간호사 등을 확보했다고 해도 (특성상)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렵다. 마취과, 소아과가 있어야 하고, 중환자가 많아지면 내과 의사도 있어야 된다. 여기에 더해서 사고 나면 책임도 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큰 병원조차도 산부인과에 분만받을 의사들이 부족한 상황이다. 의료취약지 임산부가 안전하게 원정 출산을 할 수 있도록 교통비 지원과 편안한 이송체계를 갖추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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