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대리수술' 등 의료 관련 범죄로 의사의 '윤리'가 강조되고 있다.
강력한 법과 제도에 따른 타율규제에 대한 압박이 강해지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는 전문가 집단의 자율규제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의사 직역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자율징계의 종류와 수위를 강화하는 대안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 임기영 위원장(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은 의협 출입기자단과 인터뷰를 통해 '제 식구 감싸기', '철밥통' 등의 오명을 씻고, 제대로 된 자율 정화를 통해 바닥으로 떨어진 의권을 회복할 방안으로 의협의 자율규제 기구인 중앙윤리위원회의 역할 강화를 강조했다.
◆ 중윤위 현실적 한계…강제조사권 없고, 개인정보 보호·인권침해 이유로 업무 수행 어려워
그간 지속해서 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이하 중윤위)의 한계를 지적해왔던 임기영 교수는 새로 위원장에 선출된 데 감사를 전하며, 중윤위가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그리고 높은 기준을 갖고 자율규제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무엇보다 임기영 교수는 잇따라 발생한 '유령 수술', '대리 수술' 나아가 수술실 내 의사의 성추행 등 강력범죄 등의 사건 사고로 의사의 신뢰가 낮아진 상황에서 중윤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중윤위가 아무리 강한 처벌을 통해 자율규제를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있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중윤위는 피 심의인의 인권 보호를 이유로 심의 일정과 대상 등이 모두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으며, 강제조사권도 없고, 최대 징계가 회원자격 정지 3년으로 징계 권한이 낮아 실효성이 부족하다.
먼저 의협 중윤위의 지나친 '비밀주의'에 대해 임기영 교수는 "캐나다처럼 면허관리기구를 운영하는 나라의 경우, 징계대상자에 대한 청문심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대중에게 사전 고지되고, 일반 시민들의 청문심사 참관은 물론이고 언론 방송의 자유로운 취재, 중계까지 허락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윤위의 비밀주의 때문이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 인권 침해 등등의 이유로 청문심사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징계 결과 공표까지 제약을 받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징계 결과 공표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소송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심의 일정과 대상, 심의결과 등을 공개하는 문제는 명확한 법리적 판단을 구하는 게 먼저일 것 같다. 무엇보다 공익을 위한 중윤위의 정당한 징계 업무에 대해서는 국가가 법적으로 보호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즉 징계대상자가 중윤위의 징계에 대해 소송을 남발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차단해 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제조사권이 없는 문제의 경우, 최근 전문가평가제를 통해 의협 내부에서도 이를 보완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임 위원장는 "(이를 이용해) 전문가 평가단이 필요하면 보건소를 대동하여 강제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보건소 혹은 관할 관청의 협조가 없으면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전문가 평가단에 특사경에 준하는 권한을 부여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과연 정부에서 의사사회에 그런 권한을 줄지는 회의적이다"라고 언급했다.
◆ 살인죄에도 최고 '회원자격 정지 3년'…'제 식구 감싸기' 오해 살 수밖에
무엇보다도 임기영 위원장은 중윤위의 낮은 징계 권한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중윤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대 수준의 징계는 회원자격 정지 3년에 불과하다. 외부에서는 의협 중윤위가 같은 의사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임 교수는 "중윤위에서는 의료법 위반뿐 아니라 살인, 사체 유기, 미성년자 성폭행 등 다양한 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의 사건을 다룬다. 이들이 사회로부터 징역 20~25년 이상의 형을 선고 받는 경우에도 중윤위가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위가 자격 정지 3년이다. 이럴 바엔 중윤위 징계를 안하는 게 낫겠다 싶을 때도 있다. 성폭행범에게 회원 자격 정지 3년의 징계를 내리면, 어떤 국민이 납득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한계 때문에 의사들이 철밥통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라며 "앞으로 중윤위 징계 수준을 영구제명, 제명 등으로 강화하고 더 나아가 실질적인 면허 정지권으로 규정이 개정돼서 정말 파렴치한 강력범죄를 저지른 회원에 대해서는 최소한 제명 내지는 영구 제명함으로써 제대로 된 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기영 위원장은 특히 중윤위가 '윤리위원회'인 만큼 '윤리적 판단'은 '법적인 판단'과 별개로 신속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강력 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이 중윤위 징계 과정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고, 재판 절차가 완전히 종결되기 이전, 즉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 이전에 중윤위가 어떤 결정을 내리면 강하게 반발을 하고 결정에 불복하거나 심지어 소송 운운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캐나다의 예를 들어 중윤위의 징계 판단에 대한 존중도 강조했다. 캐나다는 의사단체 징계위원회의 징계가 일반 법원 1심으로 인정받고, 그 결정의 권위를 보호받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오직 법원만이 정당한 징계권을 가진 유일한 기구인 것처럼 기능하기 때문이다.
◆ '영구제명' 등 중징계 가능하도록 개선해야…"전문가 집단 자율정화 통해 신뢰 회복 가능"
이 같은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임기영 위원장은 궁극적으로는 의사협회에 독립적인 면허관리기구를 설립하고 강력한 자율징계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기영 위원장은 "면허관리기구 설립은 의협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일로서 중윤위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다만 국민과 정부가 면허관리 기구 설립에 동의하고 허락할 수 있으려면 의사사회가 자율규제 의지와 그 실천 노력을 보여 주어야 하고 이를 중윤위가 주도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차적으로는 전문가평가제에서 합의된 중윤위의 행정처분 요구, 즉 일 년 이내의 면허정지 요구를 약속대로 보건복지부가 100% 수용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중윤위의 규정 개정, 조직 강화 등을 통해 자율규제를 위한 노력을 쉼 없이 해나가야 한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추진되는 등 비 윤리적인 의사들을 법률을 통해 외부에서 통제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해 우려했다.
임 위원장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흉악 범죄를 저지른 의사들의 면허를 취소시켜야 한다는 주장에는 찬성한다. 대다수 선량한 의사들은 그런 의사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면 안된다. 그런 사람들을 의사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자율 규제, 자율정화이다. 다만 면허취소의 주체는 반드시 우리 의사들 자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는 선량한 의사들의 자율규제, 자율정화 의지를 믿고 응원해 주어야 하고, 의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비장한 각오로 자율규제를 강력하게 수행해 나가야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선진국과 같이 의사면허관리원을 설립운영하는 것이지만, 그 전 단계로서 지금 당장은 중윤위가 자율규제기능을 좀 더 강력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말했다.
전문가단체인 의사단체가 자율 정화를 이룸으로써 의권 회복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기영 위원장은 회원들을 향해 "제가 즐겨 인용하는 말 중에 일본의 유학자 하야시 줏사이의 말이 있다. '작은 선은 큰 악과 같고, 큰 선은 비정함을 닮았다'는 말이다. 우리 의사사회가 비윤리적 행동을 한 회원들을 단지 동료라는 이유로 감싸준다면 그것은 큰 악을 방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의권 수호, 즉 전문가적 자율권이라는 큰 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비정한 결심을 해야만 하는데 그것이 바로 중윤위라고 생각한다. 회원여러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중윤위를 신뢰하고 응원하고 보호해 달라"고 회원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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