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새로운 의료 사회계약이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특수하지만 위태롭던 의료체계가 의대정원을 비롯한 정부 정책 강행에 무너지며 새로운 의료 사회계약을 논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은 14일 저녁 의료윤리연구회 강의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박 부회장은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특수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해외의 경우 우리나라와 달리 국가와 의사가 계약을 맺는다.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근로계약을 맺거나, 개원의로서 보험자인 국가와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반면 우리나라 의료는 사회계약 없이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를 통해 의사를 수가가 정해진 국민건강보험에 강제로 동원한다. 수가협상과 같은 외피는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안을 받지 않아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강제로 결정되는 구조다.
이로 인해 의료체계 문제들이 파생돼 왔다는 것이 박 부회장 생각이다. 박 부회장에 따르면, 수가가 낮아 유지가 어려운 뇌혈관 수술 같은 분야는 비급여와 박리다매로 벌충하며 유지했다. 값싸고 질 좋은 필수의료는 이 같은 교차보조로 지탱됐다.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 근거로 든 필수의료 기피 역시 사회계약 부재와 맞닿은 문제로 지목됐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로 인해 대표적인 기피 원인인 법적 리스크를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과거 의료사고 배상액 급증 현상을 진료비 인상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부가 수가를 정하는 구조에서 강제지정제에 동원돼 필수의료를 떠나는 대응밖에 할 수 없었다고 박 부회장은 지적했다.
이처럼 사회계약 부재 상태에서 요양기관 강제지정제 위로 쌓아 올린 의료제도는 위태롭지만 성과는 일반적인 서구권 국가보다 좋았다. 실제 지난해 OECD 보건통계를 보면 한국 기대수명은 83.6년, 영국은 80.4년이다. 10만 명당 암사망률 역시 한국은 160명, 영국은 222명이고, 출생 천 명당 영아 사망률 역시 한국은 2.4명, 영국은 4명이다. 영국에선 무릎 인공관절 치환술을 위해 200일 이상 기다려야 하나, 한국은 대기시간이 거의 없다.
박 부회장은 불안정하지만 높은 성과를 낼 정도로 성장한 의료체계를 ▲보완하고 상호 타협하며 발전시키는 방향 ▲위태로운 현 의료체계 원인인 사회계약 부재를 해결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는 사회계약 부재라는 근본적 문제는 방치한 채 필수의료 기피나 OECD 평균 대비 의사 수 부족 등 표면적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개혁을 밀어붙였고, 현 의료체계 보완이라는 선택지는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박 부회장은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로 인해 즉각적 개선은 어려울 수 있는 만큼 단계별 접근을 제안했다. 강제지정제를 비롯해 강제 수가, 강제 심사, 강제 환수 등 네 단계 연결고리에 하나씩 접근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수가에 대해선 실질적 계약 형태를 위해 중재 제도를 도입하는 식이다. 협상에 이견이 있을 때 양측 대리인을 통한 제3자 중재 판정 같은 방식을 도입한다면 정부 일방적 결정에서 벗어나 계약의 관점을 복원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부회장은 의료계가 먼저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로 인한 의료체계 문제와 개선방안에 대해 정면으로 들여다 보고 대안을 마련해 국민적 관심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실 의사들도 잘 모르거나 정면으로 들여다 보고 있지 않은데, 자꾸 이런 얘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며 "의료계 관점만이 아니라 상대 관점에서 보편적 언어로 문제점을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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