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문턱 높은 안과 신약…환자·학계 요구에 정부 '화답'

급여는 됐지만 '현실 진입' 실패‥'재발', '까다로운 조건'이란 장애물
환자들 현실성 없는 기준에 좌절‥학계도 지속적인 의견 제출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4-18 05:55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보험 적용이 됐지만, 치료는 멈췄다. 희귀 안과질환 환자들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다.

치료제가 허가되고 건강보험 급여까지 적용됐지만, 정작 그 약을 쓰기 위한 조건은 지나치게 까다롭다. '쓸 수 있는 사람'보다 '못 쓰는 사람'이 더 많은 기형적인 구조. 환자들은 시간이 없는데, 제도는 기준을 앞세워 그들을 멈춰 세우고 있다.

다행인 점은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학회와 환자들의 문제 제기에 정부가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는 것이다.

17일 열린 '중증안과질환 치료 환경 개선 및 치료제 보험 적용 요건 완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서울대병원 안과 윤창기 교수, 대한안과학회 김찬윤 이사장, 한국포도막학회 최경식 회장이 참석해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들은 "국내 안과 질환의 진단 및 치료 환경은 여전히 제도적, 현실적 한계가 많다"며 공통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논의의 중심에는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제인 한국노바티스의 '럭스터나(보레티진네파보벡)'가 있었다. 이 유전자 치료제는 2021년 9월 국내 허가를 받았고, 지난해부터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됐다.

하지만 급여 기준이 매우 엄격해 ▲RPE65 돌연변이 유전자 진단 ▲투여 시점 기준 만 4세 이상 65세 미만 ▲양안 최대교정시력 0.3 이하 또는 양안 시야 20도 미만 ▲충분한 생존 망막세포가 존재할 것이란 조건이 따른다.

특히 충분한 생존 망막세포는 ▲ 후극부 망막 두께가 100㎛ 이상일 것 ▲ 시신경유두 면적의 3배 이상 위축·색소변성 없는 망막이 존재할 것 ▲ 중심 30도 내 시야가 Goldmann III4e isopter 기준으로 남아 있을 것이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이 조건은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매우 까다로운 수준이다. 독일, 프랑스, 영국, 호주, 스코틀랜드는 별도 제한이 없으며,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스위스 등은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만 충족하면 급여가 가능하다.

망막색소변성증 환자 김상돈 씨는 치료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럭스터나의 사전승인 신청서를 냈지만, 조건 미충족으로 반려됐다. 

그는 "해외는 하나만 충족해도 되는데 한국은 세 가지 모두 만족해야 한다"며 "환자에게는 시간이 없다. 기준이 달라 치료 기회를 박탈당하는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시신경척수염 환우 박보람 씨 역시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급여 기준 완화를 요청했다. 그는 "이 질환은 단 한 번의 재발로도 영구 장애가 생긴다"며 "신약을 쓰기 위해 일부러 재발을 겪어야 하는 현실이 괴롭다"고 토로했다.

현재 시신경척수염 치료제 중에서는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솔리리스(에쿨리주맙)', '울토미리스(라불리주맙)', 미쓰비시다나베파마코리아의 '업리즈나(이네빌리주맙)', 한국로슈의 '엔스프링(사트랄리주맙)'이 허가받았으며, 이 중 솔리리스와 엔스프링은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그러나 이들 약제를 실제로 쓰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엄격한 기준을 따라야 한다.

엔스프링은 3차 치료제로 급여를 받으려면 ▲최근 2년간 2회 이상 재발 ▲리툭시맙 투약 효과 없음 또는 부작용 ▲EDSS 점수 ≤ 6.5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솔리리스는 4차 치료제로 ▲최근 1년 내 2회 또는 2년 내 3회 재발 ▲기존 약제 투여 후에도 재발하거나 부작용 발생 ▲EDSS 점수 ≤ 7을 조건으로 한다.

이에 대해 관련 학회는 "최소한 기존 약제에 부작용이 있거나 환자가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엔 약제를 변경할 수 있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리툭시맙 다음 단계부터 바로 신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한 상태다.

정부는 이번 토론회에서 비교적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심평원 약제기준부 강미영 부장은 "럭스터나의 급여 기준은 임상시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3가지 조건을 모두 반영했다"며 "아직 장기 추적 데이터가 부족해 성과 평가를 기반으로 기준을 재정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신경척수염 치료제에 대해서도 "재발 기준은 완화 방향으로 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고가 희귀질환 치료제의 급여 확대는 재정적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제약과도 맞물려 있다. 

강 부장은 "한정된 재정에서 급여 우선순위를 따져야 하므로 일부 항목은 제한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가 치료제가 잇따라 도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다.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송양수 과장도 재정과 현장 사이의 균형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현장의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급여 기준은 다양한 위원회 논의를 거쳐 결정되므로 전문가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급여기준이 해외와 다른 이유에 대해선 인구학적·역학적 특성 차이를 언급했다. 

송 과장은 "한국인 특성을 고려해야 하는 점도 있어 외국과 일부 기준이 다를 수 있다"면서도, "진료현장에서 부족하다고 지적되는 부분에 대해선 실제 데이터가 축적되면 검토와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한 제도 정비의 필요성에도 동의했다.

송 과장은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급여 기준도 유연하게 발전해야 한다. 진료 현장의 필요성에 기반해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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