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모두들 예견된 일이라고 말한다. 필수의료의 연장선에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도 발표됐지만, 효율적인 응급의료 전달체계의 개편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었다.
얼마 전 발생한 대구 10대 청소년의 사망 사건은 현 응급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실 과밀화, 의료인력의 부족을 해소하려면 응급의료를 담당할 수 있는 지역 병원들의 활용과 제대로 된 응급의료시스템 구축을 요구했다.
지난 3월 19일 대구에서 17세 청소년이 4층 높이 건물에서 추락했다. 목격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가 발목과 머리 등을 심하게 다친 청소년을 구급차에 태우고 약 2시간 동안 치료해줄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권역외상센터를 포함해 7개 병원 모두 병상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다. 방문하려던 대구 시내 종합병원 및 대학병원들은 이미 응급실 환자가 넘쳐났고, 이에 따라 의료진이 10대 청소년을 수용할 여유가 없었다.
구급차에 실려 2시간 동안 7개 병원을 표류한 청소년은 결국 심정지가 발생해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에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문제는 일명 '구급차 뺑뺑이', '응급실 표류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흔히 목격되는 응급의료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응급의료체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꼬집었다.
응급환자는 골든타임 내 치료할 수 있는 응급의료기관에 도착하면 대부분 생명을 살릴 수 있다. 따라서 의료계를 비롯 환자단체에서는 응급의료전달체계의 근본적인 개편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장 시급한 사항은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하는 것이다. 응급실은 도착 순서가 아니라 중증도 순서에 따라 치료받는다는 대국민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지하철 객석에 경로 우대석이나 임산부 배려석을 별도로 마련해 놓으면 대부분의 일반 승객은 이 자리를 이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응급실 이용에 관한 중·장기적인 인식 개선을 위해 대국민 캠페인과, 응급실 내부에 이용 안내 관련 공공 디자인 적용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119 구급대가 첫 번째 응급의료기관을 신속히 선정하기 위해 응급의료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구급대원이 한국형 병원 전(前) 중증도 분류(Pre-KTAS)에 따라 이송병원을 선정하는 시범사업이 현재 진행 중이지만, 응급환자의 중증도를 정확하게 평가해 이송하기 힘든 현실적·제도적 문제가 있다. 응급의료기관의 인력·병상·장비 등에 관한 정보도 실시간으로 제공되지 않아, 중증 응급환자의 경우 구급대원이 일일이 개별 응급의료기관에 전화해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더불어 지역응급의료센터/응급의료기관의 기능과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지역 기관이 최대한 응급환자를 담당한 후 환자 상태에 따라 상급종합병원이 최종치료를 하는 방식으로 의료전달체계가 바뀌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발표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에는 '전국 어디서나 최종치료까지 책임지는 응급의료'를 목표로 중증-중등증-경증 등 단계별 응급의료기관 진료기능을 명확히 정립하고, 응급의료 전달체계를 정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중에서도 중증응급의료센터는 전국 어디서든 1시간 안에 중증응급환자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늘려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현 방침대로 흘러갈 경우 전반적으로 중증응급환자는 상급종합병원 위주로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복지부가 응급실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최소한 종별로 역할을 분리시키는 방향을 정했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대형병원이 아닌 중소병원과 의원들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 외의 지방 지역에는 1~2개의 대형병원이 있는데, 이 소수의 병원만으로 권역 전체의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골든타임이 중요하다면 실력을 갖춘 지역 지역 병원을 파악해, 역할 수행에 동참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의료계는 규모에 상관없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을 수배하고, 환자가 이송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편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관계자는 "그동안의 정부 정책들이 대학병원에만 몰아주기 식으로 이뤄지는 지원이 대부분이었다. 지원금 뿌리기 정책 같은 미봉책으로만 일관해 왔기 때문에 지역사회 내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료기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 효과적인 필수의료 지원 대책은 중소병원에서도 필수의료를 담당할 인력을 채용해 운영할 수 있도록 저변을 확대하는 방향이다"고 말했다.
동시에 체계적이고 합당한 수가 개선의 선행도 뒷받침돼야 한다.
단편적으로 SU(뇌졸중 집중치료실)는 운영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다. 뇌졸중 집중치료실 수가는 일반 중환자실 수가보다 못 미치기 때문이다.
수술에 필수적인 마취과 전문의만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최근 마취통증의학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마취 수가는 일본의 1/7, 미국의 1/23 수준이다. 마취료의 원가 보전율은 72.7%에 불과한 실정이다.
중증/응급 의료는 24시 운영이 필수적이지만 진료의 특성상 많은 환자를 볼 수 없는 구조다.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고착화될수록 의료 현장에서는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병의협 관계자는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수가 인상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환자가 사망하면 어떻게든 책임질 희생양을 찾아 처벌하려는 잘못된 관행을 없애기 위해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면책 규정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의료 관련해 5년간 추진되는 '응급의료 기본계획'은 벌써 4차가 진행 중이다.
2016년 응급 환아 김민건 군 13개 병원 전원 거부 사망 사건, 2019년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과로사 사건, 2019년 응급 환아 김동희 군 권역응급의료기관 수용 거부 사망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각각 협의체까지 구성해 응급의료체계 개선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환연은 "이러한 응급환자 구급차 뺑뺑이와 응급실 표류 현상이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정부의 강력한 추진 의지 부족 때문이다. 정부의 확고한 추진 의지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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