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아동병원…땜질 대책에 무너지는 소아의료

대학병원 전담의 정부 지원하자 아동병원 의사 사라진다
야간·휴일 진료 축소하는 지역 아동병원 5개월 내 급증 전망도
"전문의가 다시 현장에 돌아올 수 있게 유인책 만들어 달라"

조후현 기자 (joecho@medipana.com)2023-06-10 06:03

아동병원 의사들이 기자회견 전 정책 미비로 사망한 어린이를 위해 묵념하고 있다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소아청소년과 1차의료를 담당하는 개원가에 이어 이번엔 2차의료를 담당하는 아동병원이 고사 위기를 선언했다.

소청과 필수의료 대책으로 3차의료에 해당하는 대형병원이 전담의 채용을 늘리자 아동병원 의료인력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5개월 내 야간·휴일 진료를 축소하는 아동병원이 급증할 것이란 설문 결과도 제시됐다.

이들은 문제가 크게 보이는 부분만 메우는 땜질식 대책이 아닌 국무총리 산하 '소아필수의료 살리기 특별위원회'를 설치, 범부처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아동병원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했다.

아동병원협회는 정부가 내놓은 필수의료 대책과 소청과 대책에 대해 현장 실효성이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소청과는 이미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한 상황인데, 소청과 전문의가 진료현장에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은 마련하지 않은 채 달빛어린이병원 등 하드웨어만 늘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부가 확대에 나서는 달빛어린이병원이 '눈속임' 정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날 참석한 한 소청과 전문의는 "우리 병원은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주말도 오후 5시까지 진료한다. 그런데 달빛어린이병원은 아니다. 저녁 10~11시를 넘겨야 하기 때문"이라며 "반면 전국 40개 달빛어린이병원 중 상당수는 1주일에 한 번 저녁 10~11시까지 진료한다. 전형적인 전시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매일 저녁 9시까지 진료하는 우리 병원은 달빛어린이병원이 아니라 아무 수가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어찌 보면 속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오히려 상급종합병원 위주 대책을 짜다 보니 아동병원 봉직의가 이탈하는 현상도 발생하는 실정이다.

소청과 진료 인프라가 무너지면서 대학병원에서 중증·응급환자를 다룰 수도 없는 상황이 되자 정부는 국민 원성을 막기 위해 응급실 및 입원환자 전담의 채용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동병원 봉직의가 여기에 지원하며 인프라가 무너지는 일종의 '돌려막기' 대책이 됐다는 지적이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또 다른 소청과 전문의는 "전공의가 없는 상태에서 대학병원 전담의가 어디서 오겠나. 대부분 아동병원 봉직의가 가는 것"이라며 "아동병원 봉직의가 대학병원 입원전담의를 메우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동병원에서 주 78시간 일하다 대학병원에서는 길어야 30시간 일하고 교수보다도 임금을 많이 받는다"며 "정부가 지원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실제 아동병원협회가 전국 120여 개 아동병원 가운데 협회 소속 병원 90여 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71.4%가 향후 평일 야간 및 휴일 진료시간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평일 야간과 휴일을 더해 작게는 5시간에서 최대 20시간까지 감축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감축 시점을 5개월 내로 답한 비율은 75.8%에 달했다. 진료 감축 이유로는 의사 수 감소가 34.2%로 가장 많았고, 간호사 등 의료인력 이탈이 32.9% 수준이었다.

설문에 응답한 병원은 60개 내외였고, 비회원 병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가정할 때 반년 내 전국 아동병원 절반 이상이 야간 및 휴일 진료를 단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아동병원 인프라 붕괴는 소아응급의료 인프라 마비와 연결되며, 이는 중증환자 치료기회 박탈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칠곡경북대병원 소아응급의료센터 조병욱 교수는 "지난주 오전 11시에 전날 저녁부터 발열 증상이 있던 34개월 발열 남아가 응급실에 내원했다. 진찰해봤더니 아동병원 대기가 3시간 걸려 119를 불러서 온 사례였다"며 "평일엔 60~80명, 공휴일엔 120~160명 환자를 보는데 이런 환자가 대부분이다. 진짜 중증 환자는 1~2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이렇게 경증환자 사이에 끼어서 의사를 만나지 못한 채 대기하는 1~2명의 진짜 중증 환자"라며 "지역 병원이 무너지며 경증환자가 갈 병원이 없으니, 이들 사이에서 중증 환자를 빼낼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아동병원협회는 소아 필수의료 문제는 단편적 대책이 필요한 수준을 넘어섰다고 진단했다. 붕괴와 대란을 막기 위해서는 대책과 실행, 재정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국무총리 산하 특별위원회를 구성, 범부처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으로는 ▲환자와 의료진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의료사고면책 특례법 제정 ▲어린이건강기본법 제정 ▲1차, 2차, 3차 의료기관 소아 진료비 재정립 ▲배후진료 교수진 충원 방안 마련 ▲입원 전담의와 정규직 교수 임금 역격차 해소 ▲경증환자 수용 지역 1, 2차 의료기관 지원 등을 촉구했다.

아동병원협회 이홍준 정책이사는 "소아 야간진료는 10년 전에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러나 소청과 전문의 수도 줄고 소아 진료현장을 떠난 전문의도 많다"며 "달빛어린이병원이 없어도 야간진료는 할 수 있다. 아이가 좋아서 전공을 선택했던 그들이 다시 현장에 돌아올 수 있게 유인책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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