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치료제 적응증‥'적응증 기반 약가제도' 가능할까?

영국,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적응증별 비용효과성·사용량 고려
IBP의 경우 약제 개별적 특정할 수 있어야‥단기적인 국내 적용은 제한적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4-01-04 06:04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점차 늘어나는 다중 적응증 약제를 놓고, 이들의 약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 중 적응증별로 비용효과성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하는 방법이 제안됐다.

이미 영국,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는 다중 적응증 약제에 대해 적응증별 비용효과성이나 사용량을 고려한 '적응증 기반 약가제도(indication-based pricing, IBP)'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IBP를 국내에 적용하기엔 여러 제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IBP를 시행하려면 품목 허가 제도, 약가 결정 및 조정 제도, 약가 정산 등의 유통 관련 제도 및 관행, 처방 왜곡 방지 또는 시정을 위한 제도 등이 통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사용범위 확대 협상제도 성과평가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적응증 기반 약가제도(Indication-Based Pricing) 시행 방식에는 ▲함량 등을 달리한 제품의 별도 허가 방식 : 함량 등을 달리해 별도의 제품으로 허가를 받아 다른 가격을 설정하는 방식 ▲동일 제품 적응증별 실제 가격만 달리 책정한 후 보험자와 제약회사 간에 정산하는 방식(표시가 동일) : 함량, 투여 경로, 제형, 주성분이 동일한 제품에 관해 적응증이 달라도 유통 과정에서의 가격은 동일하게 하되 보험자와 제약사가 계약을 체결해 적응증별 실제 가격을 달리 해 보험자와 제약사 간에 정산하는 방식 ▲동일 제품 적응증별 표시된 상한금액을 달리 책정해 유통하는 방식 : 함량, 투여 경로, 제형, 주성분이 동일한 제품을 적응증 별로 별도 허가를 받아 다른 가격을 설정하거나 별도 허가를 받지 않더라도 적응증 별로 표시되는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방식이 있다.
 

'함량 등을 달리한 제품의 별도 허가 방식'은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스위스에서 적응증이 명확하게 다르거나 적응증별 개별 브랜드 판매가 상업적으로 더 매력적인 경우, 또는 두 제조업체가 동일한 화합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허가 받는 경우에 선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도 함량 등을 달리한 별도의 제품 허가는 다수의 사례들이 있다. '실데나필'은 국내에서도 함량과 적응증을 달리해 '비아그라'와 '레바티오'로 별도 허가 를 받았다. '피나스테리드'도 함량과 적응증을 달리해 국내에서 '프로스카'와 '프로페시아'로 별도 허가를 받았다. 그 중 비아그라와 프로페시아는 급여가 되지 않기 때문에 건강보험 약가에 있어 IBP 이슈는 없었다.

'자렐토'는 10mg, 15mg, 20mg의 적응증이 다르다. 자렐토 2.5mg은 자렐토 10mg 이후 등재되면서 함량산식에 따라 산정된 약가를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애플리버셉트'는 2013년 3월 바이엘이 '아일리아'(눈의 유리체 내 주사 투여)로 허가를 받았고, '잘트랩'(정맥투여)은 2013년 11월 사노피가 허가를 받았다. 아일리아 이후 잘트랩이 등재됐는데 함량산식이 적용되지 않고 신약 약가 절차에 따라 잘트랩 약가가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함량 등을 달리한 제품의 별도 허가 방식'이 국내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품목 허가 제도가 손질돼야 한다.

주성분의 함량, 제형, 투여 경로가 동일한데 적응증이 다른 경우 현행 제도에서는 원칙적으로 별도 허가를 하지 않고 기존 허가에 적응증 추가만 가능하다.

약가 결정 및 조정 제도의 손질도 필수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령에서는 기등재 약제와 함량만 다른 약제 등재 시 a) 해당 약제가 타사의 약제인 경우 기등재 약제의 약가를 인하할 수 있게 돼 있고 b) 함량산식이라는 산정기준을 적용하도록 돼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기등재 약제와 함량만 다른 약제의 적응증 가치에 기반한 약가 책정을 할 수 없다.

이에 적응증이 얼마나 달라야 다르다고 할 것인지, 허가사항의 효능·효과가 조금 달라도 적응증이 다르다고 할 것인지, 일반적인 신약 약가 등재 방식이나 협상 절차를 그대로 적용할 것인지, 함량과 적응증이 다른 기등재 약제의 약가를 고려할 것인지 등의 논의가 필요하다.

'동일 제품 적응증별 실제 가격만 달리 책정한 후 보험자와 제약회사 간에 정산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여러 적응증 중 가장 높은 실제 가격을 갖는 적응증을 기준으로 유통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보험자와 제약사 간에 계약에서 적응증별 실제 가격을 책정한 후 실제 가격이 낮은 적응증에 사용된 경우에 대해서는 보험자가 제약사에게 차액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외에 여러 적응증의 실제 가격과 추정 사용량에 따라 가중평균가를 도출해 이것을 유통 가격으로 결정하고, 가중평균가보다 실제 가격이 낮은 적응증에 사용된 경우에는 보험자가 제약사에게 차액을 지급한다. 가중평균가보다 실제 가격이 높은 적응증에 사용된 경우에는 제약사가 보험사에게 차액을 지급하는 방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적용된 선례가 없으나, 스위스,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은 이 방식을 적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일 제품 적응증별 표시된 상한금액을 달리 책정해 유통하는 방식'은 1) 동일 제품을 적응증별 허가를 따로 받아 각 허가별 가격을 책정하거나 2) 1개의 허가 제품이라도 적응증별 가격을 달리 책정해 유통할 수 있다.

그렇지만 1)은 의약품 허가 규제상 어렵고, 2)는 완전히 동일한 제품이 최종적으로 어떤 용도(적응증)로 사용되는지에 따라 가격을 달리해 유통돼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나라 약사법에서는 원칙적으로 단위 제형당 주성분의 함량과 제형, 투여 경로가 동일한 제제(수화물이 상이한 경우를 포함)에 대해서는 1개 품목으로 품목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그러므로 동일 제품을 적응증 별로 허가를 따로 받는 것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2)를 적용할 경우 경우 해당 제품이 어떤 적응증에 사용될지는 의사의 처방 단계에서 결정된다. 유통 단계에서 해당 제품의 가격이 결정되지 않아 의약품 유통 단계에 있는 주체들 간에 사후 정산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동일 제품 적응증 별 표시된 상한금액을 달리 책정해 유통하는 방식'이 도입되려면 제약사와 도매상 사이, 도매상과 요양기관 사이에서 제품의 가격을 실제 사용된 적응증별로 사후 정산하는 인프라 구축이 요구된다.

또한 '동일 제품 적응증별 실제 가격만 달리 책정한 후 보험자와 제약회사 간에 정산하는 방식'이나 '동일 제품 적응증 별 표시된 상한금액을 달리 책정해 유통하는 방식' 모두 보험자와 제약사 사이에 동일 제품 적응증별 실제 가격만 달리 책정하는 계약이 가능하도록 제도 변경이 동반돼야 한다.

현행 위험분담계약에서는 조건부 지속 치료와 환급 혼합형, 총액 제한형, 환급형, 환자 단위 사용량 제한형, 근거생산 조건부 급여 등이 가능하다. 하지만 IBP는 위험분담계약을 할 수 없고 현행 제네릭 협상에서 약가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

우리나라 약가 제도는 엄밀히 말해 약제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 상한금액을 결정하고 있으며, 실거래가는 상한금액을 한도로 해 시장에서 결정된다. 때문에 보험자와 제약사 사이에 적응증별 상한금액을 달리 책정하는 것이지 가격을 달리 책정하는 것은 아니다.

현행 위험분담계약에서 환급형(refund)의 경우 약제의 전체 청구액 중 일정 비율에 해당되는 금액을 신청인이 공단에 환급하는데, IBP를 할 때에도 이와 같이 약제 전체 청구액 중 일정 비율로 사후 정산이 가능한지 검토가 필요하다.

환자 본인부담금에도 IBP를 적용할지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 만약 환자 본인부담금은 의약품 유통에서 표시되는 상한금액과 실거래가에 따라 결정하고 사후 정산하지 않기로 한다면, 적응증별 환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환자 본인부담 비율이 달라지므로 그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현행 위험분담계약의 환급형에서는 제약사가 공단에도 환급을 하지만 환자에게도 환급을 한다. 이를 위해 행정적인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는 제약사가 부담하고 있다.

현행 위험분담계약의 환급형은 해당 약제를 사용한 모든 환자에게 일정한 비율로 환급을 하기 때문에 환급 대상 환자나 환급 액수를 정하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다. 그런데 동일 약제 IBP 적용으로 적응증별 환자 본인부담금을 달리할 경우, 해당 약제를 처방받은 환자들마다 부담해야 하는 본인부담금이 다르고 액수도 다를 수 있어 환급 대상이나 액수를 산정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아울러 IBP 시행 시, 적응증별로 다른 가격이 책정되면 환자 본인부담금이 더 저렴한 적응증으로 처방하는 '적응증 왜곡'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이는 사후 정산을 위해 사용된 적응증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적응증별 코드를 부여하고, 처방 시 실제 사용 적응증 코드를 기재하면 해결할 수 있다.

환자 본인부담금을 저렴하게 하기 위해 실제 적응증이 아니라 다른 적응증으로 처방한 경우가 적발된다면 처벌 조항을 만들면 된다. 예를 들어 환수 처분, 불법행위 손해배상 상계 등 임의비급여로 삭감하는 명확한 절차와 법적 근거를 들 수 있다.

그럼에도 연구팀은 "행정적 조치 외에 실제 자연과학적으로는 필요한 약제를 처방한 것이기에 일종의 오프라벨 처방이라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환자 본인부담금을 저렴하게 하기 위해 실제 적응증이 아니라 다른 적응증으로 처방한 경우 적발되면, 보험자가 삭감을 할 것이 아니라 제약사가 찾아 손해배상청구를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제약사가 왜곡된 처방을 찾아내면 그에 따라 다시 보험자와 사후 정산해야 하는지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기사
어때요?

실시간
빠른뉴스

당신이
읽은분야
주요기사

독자의견

작성자 비밀번호

0/200

메디파나 클릭 기사

독자들이 남긴 뉴스 댓글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