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의대정원 확대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발한 전공의 투쟁이 일시적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정부가 가장 경계하는 전공의 단체 총회가 투쟁 선언 없이 마무리되면서다.
다만 의료계 내부에선 전공의 계약 기간인 이달 말을 기점으로 개개인 차원에서 병원을 떠나는 '일신상 사직'이 산발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13일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명시적 투쟁 선언 없이 집행부 사퇴 후 회장만 남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온라인임시대의원총회 결과 부회장과 임원, 국원은 전원 사퇴하고 박단 회장만 남은 상태로 비대위 체제 운영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당초 지난 12일 열린 대전협 임총은 이번 의대정원 확대 및 필수의료 패키지에 반발한 의료계 투쟁이 본격화되는 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전공의 투쟁 방식이나 방향에 대한 발표 없이 마무리된 것.
이에 대해 의료계 안팎에서는 공식적 투쟁이나 집단사직이 아닌 개개인 차원에서 병원을 떠나기 위한 포석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이미 파업 카드엔 업무개시명령을, 집단사직엔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명령을 준비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투쟁을 선언하고 병원을 떠날 경우 집단사직 차원이란 개연성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전공의들이 이달 말 개개인 차원에서 수련 계약을 하지 않거나 사직하는 방식으로 병원을 떠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정부에서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13일 브리핑에서 수련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에 대해 현장에서 시행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파업이나 집단사직과 달리 대응 카드를 제시하진 못했다.
의과대학 졸업 후 전공의 수련은 인턴 1년과 레지던트 3~4년 과정으로 이뤄진다. 국가통계포털 요양기관 종별 의료인력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인턴은 3217명, 레지던트는 9818명 수준이다.
인턴의 경우 과정을 마치고 레지던트로 계약을 하지 않으면 정부에서 강제할 방법이 없다.
레지던트의 경우 일부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형태는 재계약하지 않고, 3~4년 전체 수련기간으로 계약한 형태는 일신상 이유로 사직해 병원을 떠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아울러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는 4년차도 전임의로 계약하지 않고 병원을 떠나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대전협이 회장만 남은 비대위를 구성하면서 명시적으로 파업이나 집단사직을 언급하지 않은 점도 이 같은 방식이 현실화될 경우 개인 차원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란 해석도 나온다.
수도권 빅5 병원 소속 교수는 "내부에서도 전공의들이 준비 기간을 거쳐 3월에 개인적으로 계약하지 않거나 사직하는 방식으로 병원을 떠날 것이란 얘기가 돈다"며 "거리에서 집회하고 투쟁하던 2000년 의약분업 파업과는 다르다. 정부가 사전에 대응방안을 세운 것처럼 전공의들도 정부 계획을 고려한 대응방안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방식엔 정부 법적 대응이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제기된다.
전성훈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레지던트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인턴 근로자를 법으로 강제할 근거는 없고, 레지던트도 계약기간이 남아도 근로자 일신상 이유로 사직서를 낸다면 막을 수 없다"며 "사용자인 병원이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취업 규칙이나 내부 근로계약에 따른 사전 통지는 민사상 의무일 뿐 따로 효력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일한 강제는 업무개시명령인데 이 역시 근로계약이 살아 있고 근로자인 상태에서 가능한 명령이지, 사직하고 나가는 근로자 계약을 연장하라는 건 아니다"라며 "그런 해석은 수만 개 노동계 판례와도 맞지 않는다. 무리한 업무개시명령으로 소송에 가도 법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단 대전협 회장은 이날 저녁 개인 SNS를 통해 전공의 대부분이 잘못된 정부 정책에 좌절하고 강압적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며 정책 철회를 촉구했다.
박 회장은 "전일 100여 명 수련병원 대표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고 각 병원 전공의 분위기를 공유했다"며 "전국 대부분 전공의들은 의료 현장을 외면한 잘못된 정책에 좌절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처벌을 내려 통제하면 된다는 식의 강압적이고 독재적인 보건복지부 장차관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개시명령, 면허취소를 언급하며 젊은 세대를 위협하는 정부를 어떻게 신뢰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정부는 부디 우리 분노와 좌절을 외면하지 말아달라. 젊은 의사 목소리를 듣지 않고 지금 정책을 강행한다면 대한민국 의료는 완전히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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