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역할에 충실하라"‥의료계, 공단-심평원 중첩 업무 '불편'

적정진료·의료이용 명분 아래 유사 사업 확장‥중복 점검에 현장 혼란 가중
CT부터 비급여까지…공단·심평원, 관리 항목 겹치며 기준 충돌 우려
심평의학도 모자라 공단의학까지? 역할 혼선 속 의료계 '피로감' 쌓여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4-15 11:59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본래의 역할에만 충실하면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간 업무 중복 현상을 두고 의료계가 던진 말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두 기관은 각각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건보공단은 보험료 부과·징수, 급여비 관리, 건강검진 및 증진사업, 의료시설 운영 등 보험자 역할에 집중하고 심평원은 요양기관이 청구한 진료비의 적정성을 심사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양 기관의 사업 영역이 겹치는 사례가 늘면서 의료계는 "비효율적이고 혼란을 초래한다"는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건보공단의 다제약물 관리 서비스다. 공단은 2018년부터 다제약물 관리사업을 통해 의사·약사 등 전문가가 약물 복용 실태를 점검하고, 다제 약물 복용자에게 교육과 처방 조정을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의료기관 처방약뿐만 아니라 일반약, 건강기능식품, 음식, 생활습관 등 복약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필요 시 처방 변경까지 수행하는 포괄적 약물관리 프로그램이다. 최근에는 장기요양시설 입소자를 대상으로도 서비스를 확대했다.​

이는 의사의 처방 또는 조제 단계에서 실시간으로 의약품 안전사용 정보를 제공하는 심평원의 DUR과는 달리, 환자가 복용 중인 모든 약물을 통합적으로 검토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접근이 기존 심사기관의 업무와 겹친다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냈다.

A의사회 관계자는 "공단은 건강보험료를 징수하고 그 보험료를 관리하고 지급하는 곳 아닌가. 그런데 왜 약제를 관리하나"고 반문했다.

최근 두 기관은 명칭만 다를 뿐, 유사한 내용을 담은 사업을 각각 추진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건보공단은 올해 '적정진료'를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기존의 적정진료유도반을 'NHIS 적정진료추진단'으로 개편했다.

추진단은 급여상임이사를 단장으로 급여비분석반, 국민홍보반, 적정진료실행반, 임상 전문가 자문단, 사후관리협의체 등으로 구성됐다.

급여관리실이 행위나 검사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이상 경향을 탐지하면, 실행반이 급여기준 개선을 검토하고 이후 현지 확인조사 등 사후관리 절차로 이어지는 구조다. 여기에는 '급여분석 사후관리협의체'도 포함돼, 기관 현지확인 및 보험자 급여비 부담 이의신청 등의 대응을 맡는다.

심평원도 올해 '적정의료이용추진본부'를 신설했다. 심사운영실, 심사기준실, 디지털운영실, 법규송무부, 빅데이터실, 심사평가연구실 등 실무 부서가 참여하고 있으며 진료 항목별 적정 이용량 기준 마련, 실시간 의료이용 내역 확인시스템 개발 등을 진행 중이다.

공단은 '진료의 적정성', 심평원은 '의료이용의 적정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현장에서는 하나의 진료 항목을 두고 두 기관의 점검을 모두 받아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두 기관 모두 CT 과잉 촬영을 공통 관리 항목으로 삼고 있어, 같은 행위에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정책 수용성 저하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건보공단이 4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비급여 정보 포털'도 유사한 중복 논란을 불러왔다.

공단은 비급여 항목의 가격 정보뿐만 아니라 주요 항목의 안전성·효과성 정보, 질환별 증상 및 치료정보까지 통합 제공함으로써 국민의 의료 선택권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 기능이 기존에 심평원이 수행해온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제도'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심평원은 전국 병·의원이 제출한 비급여 항목 가격을 바탕으로 수년간 데이터를 공개해왔으며, 이를 통해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양 기관이 비급여 항목 확대를 예고한 상황에서, 의료계는 데이터 체계나 기준의 충돌이 현장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

의료계는 기관 간의 협력으로 데이터 품질이 높아지는 것은 환영하지만, 역할 구분 없는 경쟁 구도가 형성될 경우 가장 큰 피해는 결국 현장에 돌아온다는 입장이다.

B의사회 관계자는 "두 기관이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각자의 방향성은 달라야 한다"며 "특히 공단이 진료나 약제 관리처럼 기존 심사기관과 중첩되는 사업에 손을 대는 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심평의학'에 이어 '공단의학'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정책적 명분과 달리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기관 간의 과잉 개입으로 진료 위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단과 심평원 모두 건강보험제도 내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업무 영역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만큼, 의료계와의 협의 없이는 기준 혼란과 현장 부담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C의사회 관계자는 "공단은 보험료 납부율을 높이고 부정수급을 차단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 진료의 적정성 평가는 심평원이라는 원칙이 무너지면 기준도 일관성을 잃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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