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최성훈/조해진 기자] '코리아 패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업계에선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접어들면서
①해외 국가들이 약가를 산정할 때 고려하는 약가참조국이 된 데다 ②국민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한 의약품 최저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약 약가제도로 인한 낮은 가격은 의약품의 가용성을 떨어뜨리고 출시 지연 또는 제품 철수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업계는 신약 접근성 향상을 위해 적정 보상에 따른 대안이 필요할 때라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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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약 승인율, 韓 14% vs OECD 44%
미국제약협회(PhRMA) 자료에 따르면 코리아 패싱은 실존한다. PhRMA가 최근 10년간(2012~2021년)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 허가된 신약 460개를 두고 각국 승인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에서 허가된 신약은 33%에 그쳤다.
G20 국가 평균인 38%나 OECD 국가 평균인 41%보다 낮은 수치다. 특히 신약 승인율 차이는 환자 수가 적은 혈액질환(혈액암, 혈우병 등)이나 희귀질환으로 가면 더욱 도드라진다.
같은 기간 한국에서 허가된 혈액질환 신약 승인율은 8%인 반면, G20과 OECD 평균 신약 승인율은 각각 31%, 41%다.
또 희귀질환 신약 승인율은 한국이 14%인데 반해 G20과 OECD 평균 신약 승인율은 각각 41%, 44%였다.
이러한 낮은 접근성은 도입속도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같은 기간 해외 최초 허가된 신약이 1년 내 도입되는 비율을 살펴보면 미국이 78%로 가장 많았고, 이어 독일 44%, 영국 38%, 일본 27% 순이었다. 반면 한국은 5%에 불과했다. 새로 허가된 20개 신약 중 단 1개만 국내허가를 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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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가·공개방식 약가정책이 화 키워
한국이 낮은 신약 승인율을 보이는 까닭을 살펴보면 결국 약가정책으로 귀결된다. 비단 국산신약뿐만 아니라 해외신약도 마찬가지다.
국내 전체 약품비 중 건강보험 등재 의약품이 약 9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건보 등재와 관련한 정부 의약품 상한금액 산정 방식은 결국 신약 도입의 최대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의 의약품 상한액 결정 요인에는 외부 참조 약가(External Reference Price, ERP)와 내부 참조 약가(Internal Reference Price, IRP), 경제성평가 등이 있다.
그중 해외 신약에 대한 약가 상한선은 A8 국가(독일, 미국, 스위스, 영국,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프랑스)에 등재된 ERP의 조정평균가로 산출한다. 진료 상 필수의약품으로 경제성평가 면제를 받은 신약의 기준약가의 경우 A8 국가 조정 최저가에 맞추고 있다.
또 환자 수가 적은 일부 항암제 및 희귀질환 치료제는 위험분담제(RSA), 급여 의약품에 대한 사용량-약가 연동제 등을 통해 상한액을 조정하고 있다.
문제는 ERP를 통한 약가 산정 방식은 신약 출시 지연이나 의약품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국적제약사 마켓 엑세스(Market Access) 한 담당자는 "국내 도입된 적 없는 혁신적인 신약이었음에도 우리 회사 또한 한국 런칭을 백지화한 적이 있다"면서 "한국 시장 자체가 작은 데다 상한금액 또한 A8 평균가에 그치기 때문에 본사로선 서두를 게 없다는 판단이다. 빅파마들의 신약 런칭 전략에서 한국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다국적제약사 MA 담당자는 "하루 이틀 제기된 것도 아니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공적재원을 띄는 만큼, 고시를 통해 투명하게 약가가 노출되는 것이 문제"라며 "위험분담제와 같은 이중약가 비중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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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급제(Refund)로 '두 마리 토끼' 잡는 글로벌
국가마다 약가제도가 다르고 산정방식도 다르지만, 글로벌 트렌드는 '환급제(Refund)'를 광범위하게 도입하는 추세다.
환급제란 대외 공개되는 약가로 정부와 제약사 간 가격협상을 한 뒤, 제약사가 사후 사용량에 따른 일정 금액을 정부에 환급해주는 형태를 말한다. 대외 공개되는 약가가 높은 만큼, 약가참조 대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국내선 위험분담제(RSA)가 일종의 환급제 성격을 띈다. 약제의 전체 청구액 중 일정 비율에 해당되는 금액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환급해주고 있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국가가 영국이다. 영국은 일찌감치 의약품가격규제제도(Pharmaceutical Pricing Regulation Scheme, PPRS)를 도입했다. PPRS는 제약사가 원하는 약가를 자유롭게 정하는 대신 초과 청구액은 영국 NHS에 상환하는 형태다.
최신 신약은 광범위하게 도입하는 대신 재정 건전성은 지켜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제 영국제약산업협회(ABPI)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PPRS 상한액을 넘는 지출액 약 30억파운드(한화 약 5조5000억원) 이상은 다시 영국 보건사회복지부에 귀속됐다. 또 PPRS에 따른 NHS 의약품 지출 증가분은 5년 동안 단 1.1%에 그쳤다.
이러한 정책은 영국뿐만 아니라 호주, 벨기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치료법이 없는 항암제나 희귀질환치료 등 적용범위를 좁게 설정하는 국내와는 다른 모습이다.
심지어 독일은 올해 1월 1일부터 기밀약가협상제도를 도입했다. 제약사는 기존 공개약가협상에서 벗어나 신약 약가협상 이후 급여 약가에 대한 공개 여부를 5일 이내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제약사로선 이 같은 제도를 통해 상업적 이익을 더욱 보장 받을 수 있다. 아무래도 공개약가협상의 경우 정부-환자단체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제약사에게 상업적 이점을 제시하는 만큼, 기존 신약 리베이트 할인은 7%에서 9%로 확대 적용키로 했다.
또 기밀약가협상제도 선택이 가능한 제약사는 해당 신약 임상이 독일에서 진행됐거나 연구개발부서가 자국에 있는 회사인 경우에만 한 해 산업 육성도 함께 고려했다.
이에 대해 다국적제약사 MA 담당자는 "국내서도 이중약가제도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면 코리아 패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며 "외국계 제약사는 물론 국내 제약사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표시가만 대외적으로 높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수출 가격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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