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은 의정 갈등‥대개협 작심 발언 "정부가 먼저 신뢰 보여야"

의대생·전공의 복귀 요원‥대개협 "정부의 신뢰 회복 없인 해결 불가"
군 복무·제적 압박에 단체행동 불씨‥"협박식 접근 안 돼"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3-24 05:53

23일 제35차 춘계연수교육 학술세미나 기자간담회 전경.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1년을 넘기며 장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초 정부가 의대 정원을 대폭 증원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이후, 의대생 집단휴학과 전공의 대규모 사직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 의료계는 물론 교육 현장과 병원 시스템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수습에 나섰으나 의료계는 여전히 '불신의 벽'이 견고한 모양새다.

의대생과 전공의 복귀를 위한 조건부 제안, 군 복무 유예 등 여러 조치가 잇따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정부의 진정성이 선행되지 않는 한, 사태 해결은 요원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원개원의협의회는 23일 열린 '제35차 춘계연수교육 학술세미나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번 사태의 본질과 현재 상황에 대한 의료계의 목소리를 전하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가장 큰 우려로 떠오른 사안은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갈등이었다. 이번 갈등은 지난해 2월 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기존보다 2000명 많은 5058명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오는 3월 말까지 의대생 전원 복귀를 전제로,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증원 전 수준인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고 밝혔으나, 의대생과 사직한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9일에는 전국 40개 의과대학 총장들이 휴학계를 일괄 반려하고, 유급 및 제적을 원칙대로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21일, 서울대와 이화여대는 27일, 전북대는 28일을 의대생의 최종 등록 마감일로 정했다.

최근 일부 언론이 "고려대·연세대 의대생의 절반 이상이 복귀했다"고 보도한 데 대해, 의료계는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보도된 기사로 인해 학생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개협 김재연 대외협력부회장(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에 따르면 연세의대는 의예과 1학년부터 의학과 4학년까지 총 정원이 약 720명 수준이었으나, 이번에 25학번이 추가되면서 840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기존 재학생을 제외하고 실제 복귀한 학생은 80명 정도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대부분 군 휴학을 위해 복학 신청을 한 학생들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연세의대의 실질적인 복귀율은 10%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 김 부회장의 분석이다.

김 대외협력부회장은 "연대와 고대 의대생들이 복귀했다는 보도가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으나, 실제 확인 결과 사실과 달랐다"며 "이 같은 보도는 의대생들의 판단에 혼란만 가중시킨다"고 말했다. 
대개협 박근태 회장. 사진=박으뜸 기자
의료계 역시 장기화된 갈등 상황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의대생 제적이 현실화될 경우, 의료계 내부의 단체행동 움직임이 다시 점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대개협 박근태 회장은 "교육당국이 신뢰에 기반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협박성 조치로 일관한다면, 의대생들의 복귀는 더욱 멀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복귀 대상인 사직 전공의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는 수련 재개를 희망하는 전공의들이 정상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2024년 3월 기준 임용 대상이었던 레지던트 1~4년차 9220명 중 실제 모집에 지원한 인원은 199명(2.2%)에 그쳤다.

이는 정부가 의대 증원 백지화나 필수의료정책 패키지 철회 등 근본적인 정책 방향 수정 없이 현 사태를 수습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군 복무 문제 또한 사직 전공의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의무사관후보생으로 편입되기 위해서는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전공의 과정을 시작해야 하는데,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대규모 사직 여파로 입영 대상자가 3300여 명까지 늘어났다.

이에 국방부는 관련 훈령을 개정해, 의무장교 선발 대상자 중 일부를 '현역 미선발자'로 분류해 관리하도록 했다.

그 결과, 군의관 630여 명, 공중보건의사 250명 등 총 880명을 제외한 나머지 전공의들은 '현역 미선발자'로 분류돼, 향후 4년간 순차적으로 군 복무를 하게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사실상 최대 4년간 기약 없이 군 입대를 대기해야 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대한의사협회는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법안이 통과됐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아닌, 보건복지부 장관 직속 독립기구로 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원회는 15명 이내로 구성되며, 이 중 과반은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공급자 단체가 추천하는 인사로 꾸려질 예정이다.

반면 의료 직역 간 이해관계가 상이한 상황에서 과반 구성 방식에 따른 형평성 논란과 함께, 위원 자격 제한으로 인해 실제 임상의사 등 현장 전문가가 배제될 수 있다는 점은 문제로 남아있다.

박근태 회장은 "위원회가 단순 심의기구로 의결권조차 갖지 못하는 데다, 구성 또한 의료계를 진정으로 대표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독립성과 실효성 모두 미흡한 구조"라고 평가했다.

대개협은 이번 사태의 해법은 정부의 태도 변화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박 회장은 "의료계와 학생, 전공의, 수련의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의 지혜를 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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