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최성훈 기자] 국내 의료과 중에서 눈에 띄진 않지만, 필수의료인 분야가 있다. 바로 병리과다.
병리과는 환자의 조직 및 세포 검체를 조직학적, 세포학적, 분자병리학적 검사기법을 이용해 병리적 진단 업무를 수행한다. 쉽게 말해 암 등 중증질환에 대한 최종진단을 내리는 곳이다.
병리과 판독 여부에 따라 환자 치료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 존재는 더욱 각별하다. 특히 최근에는 여러 암종의 아형이 세분화되고, 이에 따른 표적·면역치료제가 등장하면서 정밀한 진단은 더욱 요구받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병리과 전문의 숫자는 매우 적다. 대한병리학회에 따르면 학회 회원 수는 약 1200명. 그중 실질적으로 근무하는 전문의는 1000명 남짓이다.
이에 대해 대한병리학회 한혜승 이사장(
사진, 건국대학교병원 병리과 과장)은 "전문의 수가 모자라 하나의 세부분야만을 전공분야로 하기 어렵다. 대개 3~4개 이상 분야를 맡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병원 교수의 업무 역시 과도하고 보상은 상대적으로 적어 전임의나 임상교수 지원자도 없고 있던 교수도 떠날 지경이다"면서 "이 또한 디지털병리 구축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디지털병리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디지털병리란 조직 및 세포의 현미경 관찰을 위해 사용하던 유리 슬라이드를 디지털 파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디지털 슬라이드로 전환해 시공간 제약을 없애기 때문에 장점이 많다. 가깝게는 의료진 협진을 강화하고, 인공지능을 접목해 병리과 업무 및 환자 진단 효율을 높이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한 이사장은 "디지털병리가 전국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구축이 돼야만 의료비용 절감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 "학회 차원에서도 환자들을 위해 환자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위한 보험수가 제정 등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혜승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병리과 업무 강도가 높다고 들었다. 타 과에 비해 업무 강도가 어떻게 높은가.
- 병리과 업무에 대해 소개하겠다. 수술실에서 환자 암 조직을 절제 후 병리과로 보내면 병리과 선생님은 건당 수십 분간 소요되는 육안 검사 과정을 통해 환자의 병변 평가에 적합한 부위를 채취하고, 슬라이스해 파라핀 블록을 만든다.
이를 얇게 박절해 유리 슬라이드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한 건의 검체 당 수 십장의 유리 슬라이드가 만들어진다. 병리과 선생님들이 이 슬라이드를 일일이 현미경으로 관찰해 진단을 한다. 이렇게 환자의 예후 및 치료에 필요한 병리 정보를 기록하다 보면, 통상적으로 한 건당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병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루 수건 내지 수십 건의 암 수술이 이뤄지니 얼마나 노동집약적이겠나.
또한 진단 및 치료 방침을 정하기 위해 필요한 면역 염색 항목, SISH/FISH 검사 항목, 분자병리 검사 항목 등도 증가하고 있다. 동반진단으로 정성적 분석 및 계측이 필요한 항목들도 증가하고 있다. 즉, 의료가 정밀해질수록 병리과 업무량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Q. 그렇다면 하루 평균 몇 건 정도 병리 진단을 내리는지 궁금하다.
- 일반적으로 얘기하기란 힘들다. 병리과는 대학병원급, 병원급, 병리진단 전문수탁기관 세 곳으로 나뉜다. 그중 대학병원급 기관은 병리과 전문의 수가 다양하고 전공의 수도 다양하며, 병원 내에서 진단 업무뿐만 아니라 교육 및 연구 업적 등을 요구받는다. 대학병원급 기관에서는 악성 검체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병리과 전문의 수는 모자라기 때문에 하나의 분야만을 전공분야로 두기 어렵고 대개는 3~4개 이상의 분야를 맡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거기다가 대학병원 교수의 업무는 과도하고 보상은 상대적으로 적어 전임의나 임상교수지원자도 없고 있던 교수도 떠날 지경이다.
Q. 디지털병리가 구축된다면 장점은 무엇인가.
- 우선 디지털병리를 활용하면 슬라이드를 고해상도로 확대해 볼 수 있고, 알고리즘을 활용, 계측해 보다 용이하게 더 많은 병리 정보를 환자 및 의료진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병리는 질환의 공식적인 최종 진단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치료 방침 결정에 있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두 번째는 업무효율 향상이다. 질환 재발 또는 전이 등의 경우, 환자의 이전 슬라이드를 비교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건대병원은 모든 슬라이드를 보관장 또는 지하 보관실에 저장하고 있는데, 이전 슬라이드를 찾으려면 사람이 직접 가서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 때 디지털화된 병리 정보가 있다면 모니터로 저장된 파일을 비교해 볼 수 있어 매우 용이하다. 특히 이런 디지털 병리 정보는 영구 보관이 가능해 환자를 위한 평생 의료 정보로 활용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정보 공유의 용이성이다. 병리 검사 결과를 데이터베이스화 시키면 병리전문의 뿐만 아니라 타 기관의 선생님도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도 병원을 옮길 때에 직접 슬라이드를 대출해서 갖고 가지않아도 되니 중복 검사도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로 인해 암 환자의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궁극적인 장점이 있다.
네 번째로 물리적인 공간 해소에 도움이 된다. 국내에는 병리과 검사실이 232개가 있다. 건대병원만 해도 매해 H&E 슬라이드가 10만장 정도 발생한다. 여기에 특수 염색 및 면역 염색 슬라이드까지 추가하면 10만장이 훨씬 넘게 발생한다. 그러니 우리 병원보다 더 큰 병원은 훨씬 더 많은 유리 슬라이드가 발생할 것이다. 게다가 유리 슬라이드는 의료법에 근거해서 5년 이상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유리 슬라이드를 시건장치(잠금장치)를 한 보관장에 넣어둔다. 디지털병리를 도입하면 보관장 대신 서버가 들어설 것이고, 그러면 필요 공간이 1/3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적인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한 조건만 잘 갖춰진다면 바이오헬스 산업을 키우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최근에 AI 디지털 혁신의료기술이 임시 등재 절차를 거쳐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직 혁신의료기술 지정을 통해 의료기관에 디지털병리 제품이 도입된 사례는 없다.
Q. 디지털병리 시스템 도입에 있어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 디지털병리로 가야 한다고 하지만, 현재 디지털 병리시스템이 구축되어 모니터로 진단할 수 있는 병원이 국내에 7개 기관밖에 없다. 2019년에 의료기기로 식약처 승인을 받은 디지털병리 진단시스템이 병원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전의 디지털 스캐너는 해상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사용이 어려웠다. 최근에 들어서야 고해상도의 스캐너가 나왔는데, 가격이 수억대로 매우 비싸다. 디지털 스캐너에 슬라이드를 넣기 위한 병리사 인력도 필요하고, 이로 인해 시간이 지연될 수도 있다. CT 등 영상자료의 경우 용량이 작기 때문에 간편하게 CD 복사본을 만들어 공유할 수 있지만, 병리 데이터는 용량이 매우 커 서버를 구축해야 하는데, 이 서버 구축비용이 매우 비싸다. 병원 입장에서는 비용이 너무 부담스럽고 수가도 없다 보니, 도입을 망설이는 것이다.
Q. 병원이 디지털병리에 투자하기 위해선 정부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
- 2019년부터 디지털 스캐너가 국가 과제 등을 통해 도입이 가속화됐다. 병리학회에서 식약처와 함께 수가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요청을 했으나, 신기술이 아니라는 이유로 호응을 못 받았다. 영상의학과의 경우 필름이 없어지며 비용 절감이 됐지만, 국가에서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 수가를 지원해주면서 비용 절감 효과가 더 커졌다.
한국이 디지털 강국임에도 아직 디지털병리 분야만큼은 이처럼 뒤쳐졌다는 점에서 많은 분들이 놀라기도 한다. 병리 이미지를 모니터로 판독할 만큼의 기술력이 좋아진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긴 하지만, 비용(수가)적인 문제가 가장 큰 장애물이다.
Q. 수가가 아니더라도 디지털병리를 구축한 의료기관에 한해서 정부가 인센티브 등을 줄 수 있는 방향을 제안할 계획은 있는지 궁금하다.
= 디지털병리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정책 개발, 정책간담회 및 언론활동들을 하고 있고 올해도 계획 중에 있다.
Q. 학회 차원에서도 가이드라인을 보완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
- 2020년도에 디지털 병리 시스템 관리에 필요한 필수 항목들을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리고 2022년부터 디지털병리 시스템으로 1차 병리 진단을 수행하는 기관을 대상으로 질 관리를 시행하고 있다.
학회 차원의 노력과 수가는 별개의 일이라, 작년 정책 간담회 및 지속적인 홍보 활동을 통해 호소하고 있다. 작년에는 대한병리학회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한국로슈진단 후원으로 국내 디지털병리 활성화를 위한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정책간담회 개최했다.
이러한 간담회와 학회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간담회를 통해 디지털병리가 환자 치료에 적극 활용될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정부, 병의료계, 산업계 등 여러 이해당사자 모두의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올해는 정책적인 면에서 어떤 활동을 통해 어떻게 접근을 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다.
Q.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 의료계에서 병리학에 대한 관심과 비중이 크지 않다 보니 대한병리학회가 언론에 보도되는 일이 드문데, 작년에 두 차례 신문에 실린 적이 있었다. 하나는 검체 검사 위탁에 관한 기준이 2023년 9월에 고시 시행 예정이었으나, 개원의들의 반대로 잠정 연기가 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수가 할인에 대한 얘기인데, 대한병리학회는 공식적으로 수가 할인에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이다. 병리학회의 미래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병리 정책 간담회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것 역시 병리학회의 미래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올해 한 전공의가 지원을 하려다 다른 기관에 지원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건대병원에 디지털병리가 아직 설치되지 않아서였다. 이렇듯 이제 디지털병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몇 개의 병원만 도입하는 등 전국적인 디지털병리 도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과도기에 병리과 선생님들의 업무는 두 배로 는다. 따라서 디지털병리가 전국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설치가 돼야만 의료비용 절감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국가에서의 지원의 필요성을 잘 인지해 빠른 시일 내에 디지털병리 도입을 통한 발전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디지털병리 기술을 암환자 관리에 적용할 수 있다면, 환자의 의료 기관 이용비용과 시간을 줄여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학회 차원에서도 환자들을 위해 환자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위한 보험수가 제정 등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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