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김창원·정윤식 기자] 우리 정부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는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의약품 수급 불안 문제를 쉬이 해결하지 못하는 데에는 원인이 다양하다는 점이 걸림돌 중 하나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의약품 수급 불안 문제의 원인을 크게 구분한다면 수요에서의 문제와 공급에서의 문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각각의 범주 안에서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이유로 수급 불안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늘어도 문제, 줄어도 문제…공급 중단 사유 33.4%가 사용량 감소
의약품 수급 불안정이 발생하는 요인 중 3분의 1가량은 수요의 변동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9년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 내놓은 '빅데이터 기반 의약품 공급 중단 예측 모델 개발' 연구에 따르면 의약품 공급 중단 사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제약사 공급상의 문제로 전체의 34.8%를 차지했다.
이어 ▲사용량 감소 33.4% ▲제약사 경영상 의사결정 15.8% ▲원료 수급 13.2% ▲행정규제 2.6% ▲사용량 증가 0.2%의 분포를 보였다.
주목되는 점은 사용량 증가에 따른 공급 중단은 0.2%에 불과한 반면 사용량이 줄어 공급이 중단되는 경우는 33.4%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용량 증가보다 사용량 감소가 월등하게 더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사용량이 줄게 되면 제약사들은 수익이 떨어지게 되면서 시장에서 철수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한걸음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사용량이 줄어드는 이유도 다양하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가 만료되고, 이에 따라 제네릭 의약품이 출시될 경우 오리지널 의약품의 수요가 줄게 된다. 제네릭이 아니더라도 다른 경쟁 품목이 등장할 경우 수요가 줄어들 수 있으며, 시장 축소, 대체제 개발, 비급여 전환 역시 수요를 줄어들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에서 제품을 찾지 않으니 제약사 입장에서는 공급할 이유가 없고, 결과적으로는 수급불안정으로 이어지게 되는 셈이다.
반대로 사용량이 증가하는 경우에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게 된다. 처방 가이드라인이 변경되거나 적응증·임상 근거 추가, 의약품 원조·기금 지원 등의 이유로 수요가 점진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전염병·재난상황이 발생하거나 비축·사재기가 발생하면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급진적인 수요 증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상황이 대표적이다. 마스크 해제와 함께 호흡기 질환이 급증했고, 그 결과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해열제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었는데, 이를 생산이 따라가지 못했던 것.
약가 인상을 통해 해결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이라고 평가되지는 않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급불안정 의약품의 약가를 올려주고 생산을 독려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겠지만, 다른 문제들이 남는다"면서 "위탁 품목의 경우 계약할 때 생산량을 같이 계약하는데 이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한 개 품목의 생산량을 늘리면 다른 품목의 생산이 줄어드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전했다.
◆수입 문제/지연 92건 '최다'…수요 예측 필요성 떠올라
의약품 수급 불안정 문제의 한 원인이 수요의 변동이라면, 다른 한 원인은 공급의 변동이 원인이 된다. 그리고 수급 불안정에 있어 수요의 변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 가량이었다면, 나머지 3분의 2는 공급의 변동이 차지해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
앞서 언급된 '제약사 공급상 문제'에 해당하는 150건(중복)을 세부적으로 나눠보면 ▲수입 문제/지연이 92건으로 61.3% ▲품질보증 문제가 22건으로 14.7% ▲생산능력/라인 제한이 18건으로 12% ▲제품 불량/부작용이 12건으로 8% ▲제조소 손실/변경이 4건으로 2.7% ▲시설 노후/고장이 2건으로 1.3%를 차지했다.
특히 수입 문제/지연의 경우 수입처의 공급 중단 및 부족, 수입 통관 문제, 수입 가격 상승, 계약 만료 등의 문제가 있다. 업계에서 계속 지적돼 온 낮은 약가가 전체적 문제를 관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외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경우 국내에서 대응하기에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
반면 국내 행정기준에서는 의약품의 안전성 및 유효성과 관련한 행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있으며, 문헌재평가, 임상재평가, 생동재평가, 시판후조사, 허가변경 등이 불가하거나 지연되는 경우 또는 품질검사와 관련해 생산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수입처의 공급 중단 및 부족의 예시로 JW중외제약의 '엔커버액'과 영진약품의 '하모닐란액' 사례가 있으며, 양 제품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급여가 적용되는 경장영양제임과 동시에 만성 품절 위험에 시달리는 제품이다. 해당 사유로 두 제품이 완제 수입품이라는 것과 그로 인해 해외 사정에 따라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이 한정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지난 2023년 10월 이-팔 전쟁이 발발하면서 하모닐란액의 수입에 문제가 생겼다. 수에즈 운하 운행에 차질이 생기면서 독일 비브라운사로부터 해당 제품을 들여오던 영진약품의 수급에 문제가 생긴 것. 이와 반대로 지난 2019년 엔커버 역시 일본 제조사인 EN오츠카의 공급중단으로 인해 품절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복지부 차원에서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결과적으로 경장영양제 제품의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며 "경장영양제는 수입하는 나라에서도 한정적인 경우가 많기에 수급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어 "제조 공법과 역량, 허가 기준이 까다롭기에 발생하는 문제"라며 "현 상황에서 늘어나는 환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다음으로 품질보증 문제의 경우 지난 1월 비씨월드제약이 결핵치료제 '튜톨정(성분명 에탐부톨염산염)800mg'의 생산 중단을 결정한 것이 있으며, 해당 사유로 비씨월드제약 측은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진행할 의사가 없다고 전했다. 아울러 같은 시기 영풍제약도 동일한 사유로 항생제 '파소질정(성분명 티니다졸)300mg'의 생산/공급 중단을 식약처에 보고했다.
또한 지난 2022년 12월 보건복지부는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급여적정성 재평가 결과 임상적 유용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사유로 ▲스트렙토키나제‧스트렙토도르나제 ▲알마게이트 ▲알긴산나트륨 ▲에페리손염산염 ▲티로프라미트염산염 ▲아데닌염산염에 해당하는 432개 품목의 급여 삭제를 예고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식약처는 스트렙토키나제‧스트렙토도르나제의 사용 중단을 권고했으나, 수입 원료 문제로 인해 핵심 대체제인 브로멜라인 제제까지 품절 상태에 놓이며 개국가 일선에 혼란을 빚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전에 수요를 예측해 대응하는 것을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으로 꼽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사는 영업사원의 주문량을 확인해 수급불안정 의약품을 인지할 수 있다"면서 "청구·처방 자료를 활용한다면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지만, 보험 청구까지 수개월이 소요되고 심평원으로부터 데이터를 구매해야 해 비용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미리 생산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공공기관과 제약사 간 정보 격차 해소와 요양기관, 오래된 1인 약국을 비롯한 사각지대의 데이터 확보가 필요하다"면서 "통합된 의약품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예측 시스템이 있다면 의약품 생산 계획 수립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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