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1년‥정원 논쟁에 가려진 의학교육·연구의 붕괴

후폭풍 여전, 교육과 연구 위기 속 2026년 정원 3058명 조속 확정 촉구
"7500명 의대생, 누가 가르치고 어떻게 수련시킬 건가"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5-04-10 14:25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한희철 부원장. 사진=박으뜸 기자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1년 넘게 이어진 의정 갈등 속에 한국 의학계가 진료, 교육, 연구 전 분야에서 위기를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결정 이후, 급증한 의대생 교육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해법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의정 갈등 1년, 의료의 현주소와 미래를 위한 교훈' 미디어포럼에서,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한희철 부원장은 현 상황을 "의학교육과 연구의 마비 상태"라고 규정했다.

그는 "교육은 멈췄고, 연구는 교수 개인에게 떠넘겨진 상태"라며, 의정 갈등의 여파가 단순한 진료 차질에 그치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 탄핵 이후 의정 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가 생겨난 만큼, 정부가 보다 신속히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의대 정원을 조속히 확정하고, 교육 정상화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한 부원장은 외국 사례를 통해 무리한 정원 확대가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도 경고했다.

그는 "에티오피아는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대 후반 의대 정원을 급격히 늘렸지만, 의료 질 저하와 인력 유출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 의대 정원은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복합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의학한림원은 애초부터 의대 정원 확대는 정치가 아닌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해 결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증원이 필요하다면 10% 수준인 350명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독립적인 추계기구를 통해 중장기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공식적으로 전달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정부는 2024년 2월 6일 2000명 증원 방침을 발표하며 갈등이 본격화됐다. 이후 대학별 희망 정원 조사를 거쳐 2025학년도 정원은 최종 4567명으로 확정됐다. 수시 전형으로는 3010명을 모집했고, 정시 모집도 예정대로 진행돼 신입생 전원이 입학한 상태다.

현재 상당수 의대생이 휴학 또는 수업 거부를 유지 중이지만, 이들이 2025년에 모두 복귀할 경우 의대 1학년 학생 수는 약 75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예과·본과 구분을 없애고 6년제 통합 교육과정으로 전환하거나, 두 학번을 분리해 2024학번을 6개월 먼저 졸업시키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만약 두 학번을 분리해 졸업시킨다면 국가고시 시행 방식에 대해서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아울러 전문의 시험 일정 조정, 대학병원 수련 과정 재편 등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한 부원장은 "졸업 시점을 달리하면 국가시험도 분리 시행해야 하므로, 복지부와 함께 시험 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한 해에 배출되는 인원이 급증하는 만큼 수련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의대 정원 문제가 다시 정치권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교육 정상화를 위한 준비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부원장은 "의료계는 2026년 정원 3058명을 조속히 확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으며, 시민사회에서는 수업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정원 동결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치적 소모전을 막기 위해 정부가 중심을 잡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날 포럼 말미, 한 부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정책의 구조적 한계를 돌아보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보건의료 발전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추진돼 온 정책들은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이번 의대 정원 증원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 점에서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한 부원장은 "의학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준비하는 학문"이라며 "복지부, 교육부, 의료계가 함께 진정한 파트너가 되어야 하며 갈등을 빠르게 봉합하고 교육·연구·진료가 조속히 정상화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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