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의료사고로 자식을 잃은 유족들이 신촌 연세암병원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지난 7월 시행된 일명 '종현이법', '환자안전법'의 주역 종현이 어머니와 '의분법' 시행의 주역인 전예강 어린이의 어머니도 있었다.
11월 30일은 '신해철법' 혹은 '예강이법'으로 불리는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분법)이 시행되는 날이다. 우연처럼 오늘은 전예강 어린이의 생일이기도 하다.
이 당시 최씨는 "병원과의 형사소송이나 민사소송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1인 시위부터 다양한 언론을 통해 사건을 전달했음에도 병원 측의 해명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전예강 어린이 가족은 사망의 원인을 알기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했지만 병원의 거부로 각하됐고, 어쩔 수 없이 민사소송이 현재까지도 진행중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금의 의분법 시행의 배경이 마련된 것이다.
◆ 기록마다 다른 예강이의 적혈구 수치와 맥박 수치‥CCTV 살펴보니
그런데 사건은 또 다른 국면에 들어선다. 민사소송 진행중 예강이의 의무기록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많은 환자나 유족들이 병원과의 소송에서 흔히 패소하는 이유는 사건의 주요 증거가 되는 '진료기록지'때문이었다. 병원 측에 유리하게 조작된 의무기록지라고 할지라도 이는 사건의 가장 큰 근거가 됐으며, 이를 지켜보는 환자나 유족들은 쓴잔을 들이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전예강 가족들의 경우에는 흔치는 않지만 사건 발생 동안의 CCTV의 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응급실에서 7시간 만에 사망한 전예강 어린의의 '사(死)인' 규명에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는 진료기록부 등이 이상하다는 것은 이 CCTV를 통해 비교할 수 있었다.
전예강 어린이는 3일 전부터 시작된 코피 때문에 동네 내과, 이비인후과, 종합병원을 거쳐 2014년 1월 23일 오전 9시 48분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이 당시 적혈구와 혈소판 수치가 정상인의 1/3에 불과할 정도였고, 맥박수도 분당 137회(정상 : 60회 ~ 100회)로 빈맥 상태의 응급상황이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예강이는 빠른 수혈이 이뤄지지 않았다.
긴급수혈 등을 통해 생체 징후를 교정한 다음 검사를 해야함에도 불구, 병원은 긴급을 요했던 적혈구 수혈은 응급실에 도착한지 약 4시간 후인 13시 45분경이 돼서야 이뤄졌다.
최윤주 씨는 "예강이는 응급실 도착 후 맥박수 등 생체 징후가 정상이 된 적이 한번도 없었고, 적혈구, 혈소판 등의 수혈을 통해 생체 징후를 교정한 다음에 검사하라는 소아혈액종양과와 소아신경과의 협진 회신결과를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은 기다리지 않았다. 행여 답변이 늦게왔다고 하더라도 유선상으로 답을 들었어야했다"고 말했다.
예강이가 방치된 지 약 3시간 후, 오후 2시부터 레지던트 1년차 2명이 번갈아가며 40분 동안 요추천자를 5회나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그 도중 예강이는 쇼크로 사망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숙련된 전문의는 나타나지 않았다.
병원 측의 주장은 유족과 계속 어긋났다. 병원 측은 예강이가 응급실에 도착 당시부터 상태가 위중해 요추천자 시술과 상관없이 사망했을 것이기에 의료사고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소송을 진행하던 예강이 유족들은 진료기록부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적혈구(RBC) 수혈시간'이 CCTV 영상과 판이한 것.
간호기록지에 기재된 12시 11분경 유모 간호사의 수혈기록과 13시 45분경 박모 간호사의 기록을 살펴보면 혈액번호가 0114032222로 동일히다. 예강이 유족이 확보한 CCTV 영상에는 12시 11분 적혈구 수혈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으므로, 유모 간호사의 기록은 허위라는 의견.
유족들은 '맥박 수치'에 대한 기록도 의심했다. 병원 응급실 담당 김모 의사는 예강이의 응급실 내원 당시 백박이 분당 80회라고 '응급진료기록지'에 기재했다. 그러나 실제 예강이의 혈압과 맥박을 1차적으로 체크한 박모 간호사는 '간호기록지'와 '임상관찰기록지'에는 맥박을 137회라고 기록하고 있다.
애초 기록한대로라면 예강이는 내원 당시부터 빈맥 상태에 생체 징후가 극히 불안정한 상태로써 긴급한 수혈을 통한 생체 징후의 교정이 급선무였다고 결론난다.
최윤주 씨는 "이와 같이 어긋나는 기록들은 병원이 예강이 시망원인을 은폐하기 위해 적혈구 수혈시간과 맥박수를 조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은 진상조사와 함께 공식적인 사과를 해달라"고 말했다.
◆ 의분법 시행됐지만‥의무기록지 보장 못받으면 '은폐' 의혹 떨치기 어려워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11월 30일, 의분법이 시행되더라도 이와같이 진료기록부 등에 대한 조작이 이뤄진다면 환자들에 대한 어떠한 예방이나 보호가 보장될 수 없음을 피력했다.
안기종 대표는 "진료기록부, 조산기록부 및 간호기록지 등 진료기록부는 의료사고 발생시 의료인의 과실 및 의료사고로 인한 환자의 상해, 사망 등 피해와 의료행위 간에 인과관계를 입증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의료법 제 22조 제 3항 및 제 23조 제 3항에서 의료인은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고의로 사실과 다르게 추가기재 또는 수정해서는 안되며, 누구든지 정당한 사유없이 전자의무기록에 저장된 개인정보를 탐지하거나 누출·변조 또는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일 이를 위반할 경우 의료법 제 87조 및 제 88조에 의해 형사처벌까지 받는다.
안 대표는 "일반적인 진료기록부와 전자의무기록을 의료인이 사후에 수정한 경우, 수정 전·후 기록이 모두 존재해 환자 등이 어떤 내용이 수정됐는지 알 수 있어야한다. 환자 등이 열람하거나 복사를 요청할 경우도 이에 응해야한다. 안타깝게도 의료기관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관행적으로 수정 후 기록만 열람하게 하거나 복사해주고, 수정 전 기록은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료인이 전자의무기록을 수정 또는 변경하기 위해 접속을 하더라도 이러한 접속기록 자료나 변경내용을 별도로 보관하는 것이 의무화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임의로 전자의무기록에 접속해 수정 또는 변경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안기종 대표와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국회를 방문해 이와 같은 예방책과 의무화에 대해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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