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영상검사 등을 중심으로 한 '의료 남용'이나 '과다이용' 문제가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다.
이에 정부가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지만, 이를 바라 본 전문가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바로 현 '진료비 지불제도'의 개편이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비용의 무한 증식과 과잉 투자를 초래하는 공급구조에 있다는 시각이다.
현재와 같은 '행위별 수가제' 중심의 지불제도는 진료량이 늘수록 상환 금액도 늘어나므로, 공급자에게 초과생산(과잉진료)의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비급여 부문을 축소시킬 만한 효과적인 통제 수단도 없는 상태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그동안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뒤쳐진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15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된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을 위한 국회 정책 토론회'에서는 현 진료비 지불제도로는 건강보험을 지속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현재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행위별수가제는 진료 행위마다 비용을 지불하는 시스템이다. 의료 공급자들의 진료 자율권을 보장하고 어느 정도 양질의 보건 의료가 제공 가능하다는 이론적 장점이 있지만, 비용 유발적 제도로 시장 친화적이다.
아울러 사후 지불제도이기 때문에 예방과 건강증진 기능보다는 치료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더불어 진료비 총액 관리 장치가 부재하고 수가를 통제할 경우 풍선 효과가 발생한다.
민주노총 이정훈 정책국장은 "행위별 수가제는 진료량과 연동해 보상 금액이 결정된다. 진료량 증가 및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원인이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조희흔 간사도 "건강보험 재정 위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그 중 행위별 수가제는 건보 재정을 악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동의했다.
이 정책국장은 지불제도 개편을 통해 가입자 보험료 인상 억제, 가입자 의료부담 완화, 지속가능한 재정기반, 의료의 질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정책국장은 단기적으로 성과평가 적용 및 다변화된 지불제도 적용을 제안했다. '총액계약제'나 의료인에게 등록된 환자 수에 따라 진료비가 지급되는 '인두제' 등이다.
이와 함께 비급여 관리 및 퇴출, 비급여 혼용 시 급여비용을 불인정하는 혼합진료 금지 등 비급여 문제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혼합진료와 당연지정제는 주고 받는 관계였다. 혼합진료를 포기하면 적정진료 보상의 체계가 발생하는 지불제도의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월 건강보험 보장성 축소 정책 및 행위별수가제를 보완하겠다며 민간병원에 지원을 늘리는 '공공정책 수가' 도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는 민간병원에 수가를 더 지불하는 정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과잉진료를 통한 재정 위기를 촉발하는 행위별 수가제도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개선 움직임이 없었다.
조 간사는 "정부는 계속해서 마치 국민들이 의료 쇼핑을 남발해 건보 재정에 위기가 온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잉 진료는 공급자가 하는 것이지 환자가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연세대학교 정형선 의료복지연구소장은 '재정중립적 환산지수 인상률 자동 산출 기전의 도입'을 제안했다.
정 소장은 "환산지수 계약 시에 상대가치점수의 변화를 고려한 전체 수가를 고려해야 한다. 상대가치점수를 부분적으로 개정하거나 보험급여 범위를 조정한 경우 그 다음 계약에서 반영함으로써 전체 보험재정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산지수계약 대신 고시가 수정 방식'의 도입도 방법이다.
매년 반복되는 환산지수 계약 기전을 폐기하고, 연간 지출액 목표를 정하고 설정된 정책 목표에 따라 행위 및 질병군 중 선별해 고시가를 개정해 가는 것이다.
상대적 추가 보상 분야는 필수의료의 추가 보상, 의료기관 종별 상대적 보상, 전문 과목별 상대적 보상 등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김준현 소장은 행위별 수가제를 전제로 한 가감지급을 의무 적용한 '성과평가(P4P)', 의료기관의 자율적 참여를 원칙으로 하는 '대안적 지불제도'를 제시했다.
김 소장은 "성과 평가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요양급여비용 가감지급 사업'을 근간으로 내용과 범위를 보다 확장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필수의료 및 미충족 수요가 발생하는 영역은 총액예산제나 지출상한제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일차의료는 행위별수가제+성과평가 또는 인두제+성과평가 등 혼합지불제도를 적용할 수 있다. 에피소드 기반 묶음 지불제도와 인구 기반 묶음 지불제도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지체되는 지불제도 개편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정부의 '의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정책국장은 "일부 보완하더라도 행위별 수가제의 한계는 남을 수밖에 없다. 현실적 조건에서 당장 실현은 어렵더라도 총액제, 묶음지불제 등 지불제도 전면 개편 로드맵 마련과 시행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희흔 간사는 "의료비 통제를 위해 행위별 수가제의 수가 산출 방식을 바꾸는 등 결정 기전이 필요하다. 다만 행위별 수가제를 일부 개편하는 방식만으로는 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강준 의료보장혁신과장은 토론회에 나온 이야기들에 전반적으로 공감했다.
강 과장은 "오는 9월 보장성 강화 등 전반적인 개편 방안이 담김 종합계획을 발표하는데, 여기에 지불제도 개편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가격 결정 제도도 손을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공공정책수가에 대한 여러 비판도 겸허히 받아들였다.
강 과장은 "행위별 수가제 역시 의료 접근성 강화를 위한 시대적 대안 중 하나였다. 행위별 수가제가 풀어내지 못했던 것을 공공정책수가를 활용해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지불제도가 개편될 시 국고지원 확대도 반드시 뒤따라 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국고지원율은 20%로 명시돼 있으나 매년 13%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주요국의 건강보험 국고 지원율은 2019년 기준 프랑스 52%, 대만 23%, 네덜란드 54.5%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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