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밀려드는 현안 대응을 두고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정부는 의료계가 가장 민감한 현안인 의대정원 확대 및 의대 신설 등 의료인력 확충 정책 추진을 공언하고, 의정합의 조건인 '코로나19 안정화'가 충족되자 강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여기에 국회와 시민단체까지 나서 압박을 더하는 상황.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8일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대한의사협회와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 의사인력 확충방안을 논의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반면 의협 집행부는 의대정원 확대에 대한 합의가 아닌, 필요성과 적절성 여부를 따지는 논의를 시작하는 데 대한 합의라며 해명하고 있다.
한 협의체에서 나온 두 가지 입장에 서울시의사회, 서울시내과의사회 등은 의사결정 과정 공개를 요청하는 등 혼란이 나타났고 집행부를 향한 비판 목소리는 커졌다. 경기도의사회는 의대증원 정책 강행에 반발하며 의협 협상팀 해체와 비대위 구성을 통한 투쟁을 요청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 7일 의협 대의원회에는 집행부 불신임 및 비대위 구성 임시대의원총회 발의 동의서가 접수됐다.
여기서 의료계에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현안 대응에 최대 효율을 낼 수 있는 집행부를 믿어 볼 것인지, 비대위 출범을 통한 강력한 반대 의사 표명과 투쟁에 나설 것인지 기로에 섰다.
현실적으로 정부나 국회와 협상에서 결과물을 가장 잘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집행부다. 의료계에서 정부나 국회, 외부 단체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는 것은 집행부이기 때문. 최근 이필수 회장이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처럼,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현안이 있다면 대신 가져올 수 있는 실익과 그 정도를 예측해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정부나 국회를 파악하고 현안 논의를 이어오고 있는 집행부다.
집행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 나름의 전략을 갖고 대응하고 있겠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일일이 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임총이 열리고 비대위가 출범한다면 정부나 국회를 상대할 때 집행부 입지는 좁아지고 역량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비대위가 출범해 대응하고 투쟁한다면 정부 의지와 높은 사회적 요구를 꺾을 수 있을까.
비대위는 의료계가 현안에 대한 분노와 우려가 크다는 점은 보여줄 수 있을지 몰라도, 대외적으로도 인정받았던 적은 드물다. 최근 간호법·의료인면허취소법 저지 국면에서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 목소리가 중요해지면서 비대위가 투쟁 중심에 서기보다는 협업하는 모양새가 연출된 것도 무관하지 않다.
저조한 참여율로 인한 실효성도 고민해봐야 한다. 간호법 투쟁에서도 의료계가 표한 분노에 비해 매번 집회와 연가투쟁 현장은 13연대 소속 직역들로 채워지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간호법 투쟁이 잊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 건강이 볼모가 되는 투쟁이 원활하게 이뤄져도 문제다. 이미 간호법 초기 상황이 의사와 간호사 기득권 싸움으로 비춰지며 의사에 대한 국민 인식은 충분히 나빠졌기 때문.
그렇다면 그저 집행부만 믿고 있어야 할까. 이 경우 어느 순간 끝내 의대정원을 수백명 늘리게 됐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위로하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가져왔는지, 무엇을 더 내줄 뻔 했는지 회원들은 알 수도 없다.
집행부에 반발하는 입장도 이 같은 우려가 깔려 있다. 시도의사회장단 회의가 있어도 이미 정부와 어느 정도 논의를 마치고 통보하는 식이라는 지적도 있다.
집행부가 현안 대응을 지금처럼 이어가는 데 불만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도리어 비대위 구성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의견도 존재한다.
믿고 두더라도, 들고 일어나더라도, 바라는 결과물로 이어지긴 어려울 지도 모른다. 딜레마에 빠진 의료계, 정답은 없다. 다만 억울할지 모를 집행부도, 아무것도 모른 채 답답할 회원도 서로 설명은 필요할 듯 하다.
소통에 방점을 찍은 집행부 철학과 전략이 매번 최선의 결과만 도출할 수는 없다. 정부나 국회와의 소통에 매몰된 채 정작 회원과의 소통은 부족하지 않았는지 되돌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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