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희귀의약품(orphan drug)'이란 소수의 인구에서 발생하는 희귀질환(rare disease)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의약품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2016년부터 희귀질환관리법이 제정되면서 희귀질환의 관리체계와 의약품 개발 지원 정책 등이 구체화됐다.
이에 우리나라에서 희귀의약품은 유병인구가 2만 명 이하인 질환에 사용되는 의약품, 또는 적절한 치료방법과 의약품이 개발되지 않은 질환에 사용되거나 기존 대체의약품보다 현저히 안전성 또는 유효성이 개선된 의약품을 대상으로 지정되고 있다. 2021년 12개월 기준,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성분은 총 310개다.
하지만 환자의 접근성 측면에서 바라볼 때 희귀의약품은 단지 시장에 출시되는 것 뿐만 아니라 급여 여부가 중요하다. 모든 희귀의약품이 국민건강보험에 등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에서는 비용효과성과 임상적 유용성, 보험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별 의약품의 급여 여부를 결정한다.
다만 희귀의약품의 경우에는 경제성평가가 면제되거나 ICER 및 위험분담제도(RSA)가 보다 유연하게 적용되는 등의 별도 정책이 적용된다.
그 결과 희귀의약품의 가용성 및 접근성은 크게 향상됐으나, 이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지출 증가로 재정지속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희귀의약품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초고가 신약의 등재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어 환자의 접근성 향상과 재정 위험 간 적절한 균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희귀의약품에는 고가 신약에서부터 저가의약품까지 포함돼 있는데, 처방 건수 및 지출 규모가 상당히 차이가 나 각기 다른 관리 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의 '희귀의약품 사용 및 건강보험 지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희귀의약품은 13만6379명의 환자에게 7027만3462건이 처방돼 총 1조600억 원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289개 품목 중 197개 품목이 급여 의약품으로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 환자들에게 사용됐으며, 전체 진료비 106조 원 중 약품비 청구금액은 23.8조 원(22.4%)이었다. 희귀의약품은 전체 약품비의 약 4.5%를 차지했다.
청주대학교 보건의료과학대학 제약공학과 윤지은 교수는 "희귀의약품 사용 및 지출 규모는 희귀질환의 유병률이나 희귀의약품의 가용성(availability), 약가 정책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국가 간에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희귀의약품 지출 추이를 분석한 국내 연구에서는 전체 약품비에서 희귀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희귀의약품의 세부 특성을 확인하기 위해 ATC 분류 별로 처방건수, 약품비 지출 규모, 환자 당 지출 규모를 파악했다.
그 결과, 가장 처방 건수가 많고 약품비 지출 규모가 컸던 그룹은 '항종양제 및 면역조절제'였다. 희귀의약품은 대부분 항암제를 중심으로 연구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항암제는 식약처 허가나 건강보험에 등재되는 의약품의 각각 45.4%, 35.5%를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항종양제 및 면역조절제는 전체 희귀의약품 처방 건수의 54.2%(381억 건), 지출 규모의 64.4%(6,880억 원)로 조사됐다.
이 외에 처방건수는 '비뇨생식기계 및 성호르몬'과 '혈액 및 조혈기관'이 각각 181억 건(25.7%), 72억 건(10.3%)으로 많았다. 약품비 지출 규모는 '소화관 및 대사', '혈액 및 조혈기관'이 1384억(13.0%), 633억(5.9%)으로 높았다.
반면 환자 당 지출 수준이 가장 큰 의약품은 '소화관 및 대사' 그룹으로 환자 당 9100만 원이 지출됐다. '항종양제 및 면역조절제'의 환자 당 지출 수준도 2500만 원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성분별 처방건수와 약품비 지출 규모, 환자 당 지출 규모 순위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은 처방건수는 많지 않지만 환자 당 지출 규모가 큰 그룹의 성분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의약품의 단가가 다른 희귀의약품에 비해 상당히 고가인 혁신신약(First-in-Class)일 가능성이 높았다.
대표적으로 척수성 근위축증(SMA) 치료제 '스핀라자'는 전체 희귀의약품 중 처방건수 순위가 105위에 불과했으나, 전체 지출 규모 및 환자 당 지출 규모는 각각 4위와 9위에 해당했다. 스핀라자의 약가는 9235만 원이었다.
윤 교수는 "혁신 신약에 해당하는 희귀의약품은 일반적으로 제약사의 시장독점권이 보장되다 보니 일반 의약품보다 높은 수준에서 약가가 책정된다. 따라서 희귀의약품의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들이 오히려 환자들의 의약품의 접근성을 저해할 수 있는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에는 CAR-T 치료제 '킴리아'(1회에 3.6억 원)와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인 '졸겐스마'(1회에 20억 원) 등 초고가 원샷 치료제들이 건강보험에 등재됐다. 이에 따라 약제비 지출증가와 재정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청구건수는 상당히 많지만 재정 지출 규모는 크지 않은 그룹도 있었다.
혈우병A 혈액응고인자 제제인 '이뮤네이트'의 경우 청구건수는 3위에 해당하나, 전체 약품비 지출 규모 및 환자 당 지출 규모는 각각 52위, 36위로 비교적 낮았다. 이뮤네이트주의 약가는 524원으로 전체 희귀의약품 중 가장 낮았다.
이를 기반으로 전문가들은 고가 신약과 저가의약품의 희귀의약품을 별도로 관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윤 교수는 "고가 신약에 대해서는 높은 재정 지출에 대한 성과를 담보하면서도 건강보험 재정을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적절하다. 킴리아주 및 졸겐스마주를 등재하면서 환자단위 성과기반의 위험분담제를 적용한 사례나 스핀라자주 등에 적용되는 사전승인제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저가의약품에 대해서는 시장성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의약품의 공급이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이 제시됐다.
윤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의약품 생산·수입·공급 중단 보고 대상으로 희귀의약품을 포함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의약품 부족 문제가 심화된 사례를 볼 때 향후 안정적인 의약품 공급 문제는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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