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기자] 유방암 중에서도 가장 예후가 좋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삼중음성 유방암.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이 '잔혹한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무엇보다 희망과 용기가 필요했다.
삼중음성유방암환우단체 '우리두리구슬하나'를 세운 이두리 대표
<사진>도 그랬다. 암 진단 후 처음 문을 두드린 곳에선 '왜 하필 삼중음성이냐'는 말까지 들어야했다.
정보도 필요했지만, 진실된 공감과 위로를 받고 싶었다. 삶을 향한 용기를 얻기 위해선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밴드(BAND)로 '나눔'을 시작했다.
그렇게 투병생활 5년. 이두리 대표는 이제 수많은 환우들과 희망을 나누며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있다. 최근에는 3월 3일 '삼중음성 유방암의 날'을 맞아 환우들과 직접 만나 치료·관리 등을 공유하는 유방암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환우들을 위한 수첩과 굿즈를 만들고, 직접 국회 토론회에 나가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트로델비' 등 신약 처방 환경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이에 봄이 다가오는 어느 날, 이두리 대표를 직접 만났다. 그는 투병 중인 암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하고 행복해보였다. 그에게 '예전으로 돌아가도 다시 환우회를 만들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 치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했다.
Q. 환우단체를 만들자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
2019년에 처음 암을 진단받았을 때에는 삼중음성 유방암에 대한 정보가 국내에 많지 않았다. 유방암 커뮤니티를 들어가 보니 환자 수가 비교적 많은 호르몬 양성에 대한 정보는 공유되고 있었지만, 삼중음성 유방암은 부정적인 이야기가 공유되곤 했다. 예를 들면 '항암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니 좋지 않냐'는 말이나, '왜 하필 삼중음성 유방암이냐' 등이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잘 지내면서 투병하고 있는 환우분들이 많다. 제가 3기 말로 진단을 받은 후에 힘이 된 것은 그런 분들이었다. 그래서 같은 삼중음성 유방암 환우끼리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타파하고 희망을 얘기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렇게 네이버 밴드로 시작을 하게 됐다. 그것이 시초다. '우리두리구슬하나'는 먼저 떠나보낸 '구슬'이라는 친구와 함께 만들면서 짓게 된 이름이다.
우리두리구슬하나의 모티브는 '친정 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단체라기보다 모임에 가깝다. 암 환자가 실제로 느끼는 고통과 심리적인 불안감을 100%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암 환자뿐이다.
Q. 만든 후 5년이 흘렀다. 그간에 대한 소감은.
뿌듯함보다는 감사함이 크다. 환우분들은 저를 통해 용기를 얻는다고 말씀하시지만, 용기를 얻는 건 오히려 저다.
일상 중엔 집에서 거의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는데, 그러다가도 환우단체 행사를 준비할 때면 날아다닌다. 이젠 환우단체 활동을 하지 않으면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머니께서도 더 이상 말릴 수가 없다는 말씀을 하신다.
너무 아파 치료를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환우분들께서 붙잡아주고 계신다. 4기 삼중음성 유방암 5년 생존율이 12%라고 한다. 정말 낮은 확률이지만, 저는 저를 붙잡아주는 환우분들께 '생존율이 1%일지라도 그 1%가 돼서 살 것'이라고 말한다. 서로를 응원해주고 걱정해주고 기도해주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음을 느낀다.
Q. 치료 여건 개선에도 힘쓰고 계신 것으로 안다. 성과는 어떠한가.
솔직히 크게 체감되진 않는다. 여전히 전이성 삼중음성유방암 4기 환자들은 수차례의 세포독성 항암제 치료로 거의 온몸이 녹아내리고 있다. 삼중음성이기에 호르몬 치료요법이나 표적항암제를 사용할 수 없다. 유일한 약이 임상으로 입증된 '트로델비'다. 4기 환자가 2차 이상 치료에서 시도해볼 수 있지만, 급여가 적용되고 있지 않아 쓰기가 어렵다. 4기가 되면 가족이 빚을 내는 것을 보면서까지 자신이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시기가 된다.
조기 삼중음성유방암도 마찬가지다. '키트루다'에 효과를 보고 있지만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환우분들이 많다.
삼중음성 유방암은 암 진행이 빠르고, 비교적 30~40대 젊은 환자들이 많다. 이제 막 어린 아기가 있는 엄마도 여럿이다. '약이 안 맞아서'가 아니라 '약이 비싸서' 치료를 포기하고 목숨을 포기하는 환우분들을 뵐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비용 때문에 치료를 고민하는 환우분들께 일단 치료해보자고 말씀드리고 있지만, 저 또한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최근에 트로델비 급여 적용에 관한 청원이 5만명 동의를 얻었는데, 트로델비는 이미 암질환심의위원회에서 급여 적정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국회에서 유심히 검토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내로 빠르게 급여가 적용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Q. '정서적 나눔' 외에 새롭게 생긴 고민이나 목표가 있다면.
최근 '웰 다잉'에 대한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 4기 환자이고, 이제 쓸 수 있는 약은 거의 다 썼다 보니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책을 읽고 나니,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좋은 말,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죽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웰 다잉'을 주제로 한 북콘서트를 열어보고 싶다.
대개는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꺼린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동의하면 무조건 치료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이해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정말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억지로 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Q. 환우단체 운영 중에 어려운 점이나 고민거리는 없었나.
예전에는 가입절차가 간단했는데, 그러다보니 무분별한 글로 환우분들께서 마음에 상처를 입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저는 환우단체가 단단해지기를 바랬다. 그래서 지금은 가입 시 조직검사지를 받아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가 맞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있다.
그 덕분에 이후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갈등이 없었다. 광고, 영업도 없었다. 서로를 존중하고 위로하며 응원해주는 환우분들만 계신다. 덕분에 내가 도움이 되고 있음을 느끼면 행복해진다.
환우단체를 홍보해볼까도 했었다. 하지만 알음알음 찾아와 함께 좋아해주시는 지금에 만족한다. 규모가 작을 땐 교류도 더 잘 된다. 물론 더 많은 환우분들께 도움이 되고 싶지만, 작은 규모 안에서 도움을 받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Q.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다시 환우단체를 만들 것 같나.
그럴 것 같다. 4기였기에 환우단체를 만들 원동력이 있었던 것 같다. 만약 1기였다면 아마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다.
다만 환우단체를 만드는 것은 큰 각오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처음 환우단체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치의 선생님이 반대했다. 돌아가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는 게 매우 힘들 것이라고 하셨다. 실제로도 환우분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볼 때마다 많이 힘들었다.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상처를 많이 받는다. 작년엔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의학세미나 전국투어를 진행했는데, 무료여서 그런지 신청이 쉽게 취소되는 것을 보면서 힘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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