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가, '묶음수가' 도입에 반발…재정·의료서비스 하락 우려

행위별수가 정착 48년, 묶음수가 도입시 현장 반발 클 것
의료시장 질서 왜곡…환자 대기시간 늘리고 의료접근성 저하 예측
"시행목적 불분명…의료서비스 향상하려면 저수가 개선부터"
대한내과의사회 성명 발표…'묶음수가' 재논의 촉구

김원정 기자 (wjkim@medipana.com)2025-01-17 05:57

[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정부가 1차 의료기관인 의원급에 행위별수가와 별도로 '묶음수가' 도입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개원가에서는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의료기관의 재정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의료서비스 질도 함께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환자도 의료기관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묶음수가'는 지난 10일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전달체계·지역의료 전문위원회 회의를 통해 논의된 내용으로, 행위별 수가와 별도로 환자의 치료과정인 상담·진단·교육 등을 하나로 묶어 별도의 수가로 지불하는 방식이다. 

묶음수가와 기존 행위별수가를 함께 운영하는 '혼합형 지불제도' 도입을 통해 환자와 의사간 상담시간 등을 현재보다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해 환자만족도를 높이고, 진료량 감축을 통해 건강보험재정 지속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묶음수가를 도입할 경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1차 의료기관인 개원가에서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묶음수가는 의료서비스 질 저하와 과소진료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고, 특히 고령화와 중증질환 관련 환자들의 의료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6일 대한일반과의사회 좌훈정 회장은 메디파나뉴스와의 전화에서 "우리나라는 의료보험 도입 초기부터 행위별수가제도로 시작됐고 그것이 지난 48년간 정착돼 왔다. 때문에, 지금 묶음수가로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유는 이미 국민들이 행위별수가에 따른 진료체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묶음진료는 진료비가 줄어드는 대신 의료서비스도 같이 줄어들어 환자의 니즈에 비해 과소진료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환자의 질병이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료 소비 양태는 상담이나 교육보다는 검사나 처치를 더 선호한다. 더욱이 인구고령화로 인해 질병의 중증도가 증가하면서 그러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묶음수가를 통해 상담·진단·교육 등 치료과정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현재보다 충분한 상담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늘어나는 상담시간만큼 보상이 이뤄져야 현실화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아울러, 짧은 진료 후 검사나 처지를 해왔던 현 시스템을 통해 환자 대기 시간을 줄이고, 보다 많은 환자들이 전문의와 만날 수 있었던 진료접근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래의료포럼 안양수 정책위원장은 "묶음수가 도입은 실효성이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시행 목적이 불분명하다.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현재의 저수가를 올려주면 될 일"이라고 일축했다. 

또 "진료를 보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의료시장 안의 상거래라고 할 수 있다. 환자는 의료서비스를 받는 수요자인 것이고, 의사는 이를 제공하는 공급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형성된 의료시장의 질서를 정부가 나서서 임의적으로 조정하려는 것이 아니냐"며 반문했다.

묶음수가 도입이 현 의료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의료서비스의 질과 효율성을 저하시킬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안 위원장은 "행위별수가제는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수익이 발생하는 방식인데 묶음수가를 통해 상담시간을 늘리게 되면, 진료를 보는 환자수도 줄어들게 된다. 그에 따른 보상을 제대로 책정하지 않는다면 의사들이 이에 대해 동의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환자입장에서도 오랜시간 걸려서 의사를 만나는 것보다 짧게 보더라도 대기시간을 줄이고 필요한 검사, 처치 등을 진행하는 것이 치료에 유리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정부는 무슨 목적으로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인가, 현재 우리나라는 저수가로 굉장히 많은 환자를 (의사들이) 소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환자는 쉽게 전문의를 만날 수 있다. 현 시스템의 장점을 살리기 보다는 문제가 된다고 보여지는 것을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방안으로 내놓은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일침을 날렸다.

같은 날 대한내과의사회도 성명서를 통해 "묶음수가는 진료 항목을 패키지 형태로 묶어 수가를 정하기 때문에, 복잡한 치료나 추가적인 진료가 필요한 경우에도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여지가 크다. 이는 일차 의료기관에 재정적 압박을 가해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의료기관이 고비용 환자를 기피하거나 최소한의 치료만 제공하려는 경향을 촉진할 수 있어 의료 서비스 질이 심각하게 저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방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의료계와의 협력을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 것"이라며 "묶음수가정책에 대해 재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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