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일상생활에서 아프거나 다치면 병의원에서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는다.
반면 교통사고 환자들은 '자동차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게 된다. 자동차보험은 교통사고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는 것이 기본 취지다.
그렇지만 이 제도가 교통사고 환자에게 적절한 진료를 효과적으로 보장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특히 임상의들은 자동차보험 의료 제도의 효과성에 대해 비교적 낮은 점수를 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동차보험 의료 제도에 대한 임상의의 인식'에 따르면, 자동차보험은 일차적으로는 자동차의 운행에 따르는 인적·물적 손해배상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동시에 교통사고 환자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아 발생한 의료비를 보험회사가 의료기관에 지급한다는 점, 이 기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의료의 질과 환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 제도'의 성격도 지닌다.
2020년 기준으로 자동차보험에서 보험금 중 사망·부상 등 인명피해로 지급된 보험금은 전체 보험금의 43%인 6.3조 원을 차지했다. 이 중 의료기관에 지급된 전체 진료비는 전년 대비 12.1%나 증가했다.
하지만 자동차보험은 의료 제도로써 보건의료 및 복지 분야에서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으며 관련 연구도 부족한 실정이다.
자동차보험은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과 같이 재원 조달과 지불이라는 기전을 통해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의료를 보장하는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일차적으로 손해배상 보장 제도라는 특성이 있다.
이 점은 자동차보험이 교통사고 피해자 보호를 목적으로 가입을 의무화해 사회보험적 성격을 가지지만, 여전히 다수의 개별 민간보험사에 의해 관리되는 보험이라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자동차보험 의료 제도에 관한 연구가 미비한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는 진료 자료, 가입자 자료, 의료기관 자료 등 연구에 필요한 연계가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의료 제도의 목표는 건강 수준의 향상, 적절한 재정적 부담, 반응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때 자동차보험 의료 제도가 이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는 자료의 제약 탓에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분리돼 있는 관리체계도 문제다.
현행 자동차보험 진료수가의 인정 범위는 기본적으로 건강보험 수가 기준을 따른다. 이외 자동차보험 환자 특성 반영이 필요할 경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고시하는 기준에 따르도록 해 종별 가산율 및 입원료 체감 등을 건강보험과 달리 적용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심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해 위탁 수행되면서 교통사고환자 특성에 맞는 별도의 기준·절차·방법 등에 의한 심사와 적극적 제도 개선의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자동차보험 의료 제도에 대한 인식을 기술하고 관련 요인을 탐색하기 위해 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응급의학과/외상외과, 정신건강의학과, 한의과 등 교통사고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7개 진료 과목의 임상의 145명을 최초 접촉했다. 1차 조사에 응답한 참여자는 128명이었고(응답률 88.3%=128/145), 이 중 2차 조사에도 응답한 참여자는 76명이었다(응답률 59.4%=76/128).
그 결과, 연구에 참여한 임상의들은 전반적으로 자동차보험 의료 제도의 효과성을 건강보험 및 산재보험에 비해 낮게 평가했다.
아울러 3분의 2 이상이 자동차보험 의료 제도는 의료적 필요가 낮은 다수의 경증 환자에서 과다 의료 제공이 이뤄지고, 정작 중증 환자에게는 과소 의료 제공이 이뤄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동차보험 의료 제도의 효과성에 대한 인식은 한의과에 비해 의과에서, 자동차보험 중증 환자 진료 비율이 높을수록 자동차보험 중증 환자 적정진료 제약 경험이 있는 경우에 더 낮게 평가됐다.
자동차보험 중증 환자 진료 시 대다수가 적정한 진료 제공에 제약이 있다고 답했으며, 이는 주로 중증 환자에 대한 진료비 인정 항목의 제한된 적용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자동차사고 중증 환자의 경우 외상성 뇌손상이나 척수손상 등 장기적인 재활치료를 요하는 데 비해 자동차보험 재활수가 항목이 제한적이었다.
연구팀은 "현행 자동차보험 진료수가는 환자 특성으로 인해 건강보험 기준 적용이 적절하지 않고, 건강보험 기준과 달리 적용하는 사항에 대해서도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 문제를 인지하고 2014년부터 중증 다발성 손상 자동차보험 환자를 대상으로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집중재활치료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완화된 기준과 별도의 수가를 추가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자동차보험 시범재활수가는 국립교통재활병원에만 국한해 적용되고 있어 여전히 중증 환자 진료에 한계가 있다.
또한 자동차보험 진료수가에서 인정되는 건강보험 비급여에 대한 세부규정이 미비해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함에 따라 비급여 진료가 위축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동차보험 환자에 대한 직불청구금지 기준은 자동차보험 환자의 진료를 더욱 제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종합적으로 자동차보험 의료 제도의 효과성에 대한 임상의들의 부정적인 인식은 중증 환자에 양질의 의료 제공을 제약함으로써, 의료 전문성의 원칙을 제한하는 현행 기준과 관련해 반복된 좌절의 결과로 판단된다.
따라서 연구팀은 자동차보험 의료 제도의 현행 문제점, 중증 환자의 효과적 치료 보장 기능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서 단기적으로 자동차보험 중증 환자의 특성에 부합하는 '수가 항목'을 개발하는 등 현행 기준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동차보험 의료 제도의 관리구조의 문제도 손질을 제안했다.
자동차사고 발생으로 인한 신체의 손상에 대한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전문적인 지식과 많은 경험이 요구되며, 의료 제공자를 제도의 주요한 행위자로 포함하고 있다.
연구팀은 "자동차보험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의료적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 및 관심이 부족하고, 손해보험 전체를 담당하는 금융위원회와 업무 중복에 따른 관할과 책임소재가 모호한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다수의 민간 손해보험회사가 자동차보험을 관리·운영하고, 심사만 별도로 심평원에 위탁해 자동차보험 의료 제도를 전담해 관리해 나갈 수 있는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국토교통부는 산하에 의료기관과 보험회사가 협의해 구성한 자동차보험진료수가분쟁심의회라는 진료수가 기준을 심의하는 기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심평원 심사 위탁 이후 이 심의회가 거의 유명무실하게 된 상황이다. 위원회 구성, 논의의 투명성, 심의로 한정된 권한 문제 등의 문제로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기준의 지속적 개선을 포함한 의료 제도로서의 발전도 어려운 구조다.
연구팀은 "자동차사고로 인한 신체장애 뿐만 아니라 치료 후에 남을 수 있는 후유증을 감소시키기 위해 조기에 적극적인 치료적 개입과 재활이 이뤄져야 한다. 자동차보험을 의료 제도로서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는 2022년 12월에 건강보험, 의료급여, 산재보험, 보훈과 더불어 자동차보험 제도를 포괄하는 공적 의료보장 제도 간 협의 체계를 마련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자동차사고 환자의 치료와 재활이 건강보험 등과는 완전히 독립적인 자동차보험 제도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손해배상 보장 기능에 국한하지 않고 환자의 건강을 보장하는 의료 제도의 관점에서 조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팀은 "의료 제도의 관점에 입각하면 자동차보험에서도 일반적인 건강 관련 보험 제도가 갖춰야 할 구매(purchasing) 기능, 즉 급여 설정, 의료기관 지정, 진료비 지불, 진료비 심사 및 질 평가가 중요한 과제로 부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능을 적절하게 수행할 책임 관리 구조가 요청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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