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행위별 지불제도'의 악순환, 어떻게 개편돼야 하나

'가치 기반'의 보상 방식 제안, '에피소드 기반' 및 '인구 기반' 묶음지불제도 참고
지불제도 개편에 따른 효과 담보하려면 '혼합진료 금지'가 반드시 전제 조건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3-03-16 06:07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행위별 수가제'가 일종의 '골칫덩어리'가 된 것일까.

건강보험 재정의 위기 속에 행위별 수가제가 과잉 진료와 진료비 증가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공급자 보상에 있어 행위별 수가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는 진료량과 연동해 보상 규모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수익 극대화를 위해 진료량을 증가시키는 유인을 갖게 된다.

그런데 행위별 수가제는 진료량 증대에 따른 별도의 재정적인 페널티가 공급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재정 증가에 의한 위험성이 보험자에게 전가되는 특성이 있다.

최근 감사원도 건강보험 재정 관리 실태 감사를 통해, 현행 진료비 지불제도를 총량 및 총액 중심의 관리 방식으로 전환하거나 묶음 방식의 지불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건강정책참여연구소의 '건강보험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77년 의료보험 도입 당시 점수제를 시행하다가, 1981년 금액제로 변경돼 각 행위별 가격을 고시하는 형태로 전환됐다.

2001년에는 자원 소모량에 근거한 행위별 점수와 환산지수를 근간으로 하는 자원 기준 상대가치제도(Resource Based Relative Value Scale; RBRVS)가 도입돼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행위별 수가제를 대체할 만한 지불제도 개편 논의는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특히 2000년 의약분업에 따른 대규모 의사들의 진료 거부 사태, 2012년 7개군 포괄수가제 전면 시행에 따른 대한의사협회 주도의 집단 저항, 2020년 의사 정원 증가에 반대하는 대규모 진료 거부 등 지난 20여 년간 현재의 제도는 개혁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졌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현 지불제도로는 건보 재정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 개편에서 고려될 점, '행위별 수가제'와 '혼합진료' 허용

현행 행위별 수가제의 가장 큰 특성은 행위량에 대한 동기 부여가 명확하다는 점이다.

행위량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수익이 증가하고 행위량이 표준 수준 이하면 보상이 줄어드는 구조다. 의료 공급자들의 양태는 자연스럽게 행위량 증가를 추종하게 된다.

게다가 한국의 의료기관 95%가 민간 공급인 관계로 행위량 증가는 여타 정책이나 공공 혹은 공익적 운영으로 통제될 수가 없다. 따라서 행위별 수가제로 인한 과잉진료의 범람과, 행위량을 늘리기 어려운 부분의 과소진료 문제도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아울러 건강보험과 같은 공적보험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급여와 비급여를 손쉽게 혼합해 진료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즉 한국의 진료비 지불제도는 '급여 행위별 수가제 + 비급여 행위별 수가제'인 셈이다. 급여 외 비급여 영역의 행위료 수가제는 결국 혼합진료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연구팀은 "비급여 팽창 방지와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에 따른 효과를 담보하려면 혼합진료 금지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 '가치 기반 보상 방식'과 '다변화된 지불제도' 적용

전문가들이 말하는 진료비 지불제도 개편의 주요 원칙 중 하나는 '원가 중심'에서 '가치 기반'의 보상 방식으로 전환이다.

행위별 수가제를 위주로 한 전통적 지불제도는 기본적으로 투입 비용 및 치료 활동과 연계해 보상 수준이 결정되는 방식이다. 진료비 상환에 있어 의료의 질 등 가치 반영이 전제되지 않는다는 취약점이 있다.

연구팀은 "행위별 수가제가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나 관리 운영상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 운영에 있어 비용 대비 가치 향상(value for money)은 보험자가 견지해야 하는 중요한 원칙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가치 기반 방식은 단순히 비용 상환 목적의 보상 방식이 아닌, 환자의 건강 결과나 의료의 질을 근거로 한 전환을 의미한다. 이는 보장성 대책 등 지출 부문 관련 정부 정책의 실효성과도 연계된 사항이다.

단일 지불제도에서 벗어난 '다변화'된 지불제도도 필요하다. 지금과 같이 행위별 수가제 중심의 단일 지불제도를 지속할 경우, 보험자의 재정적 위험성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달리 OECD 회원군 대부분이 일차의료나 병원 진료에 있어 단일 지불제도를 적용하기 보다 복수의 지불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금전적 보상 외에도 비금전적 인센티브(순위 공개 등)를 제공하는 국가들도 다수 존재한다.

연구팀은 "공급자 위험분담의 기제로 복수의 지불제도를 적용해 보험자의 재정적 위험성 완충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지불제도 개편의 전제 조건 중 하나는 '비급여 목록'을 정리하고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제도적·법률적 근거 마련을 강조했다.

실제로 비급여 진료비에 대한 통제 기전이 없는 상황에서 제도 개편은 비용 절감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통제 기전 마련과, 급여 행위와 비급여 행위를 혼용해 제공할 경우 급여 행위의 일체 비용을 인정하지 않는 장치가 언급됐다.

◆ 현 제도를 보완할 것인가, 완전 대체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현행 제도를 전제로 한 보완적인 접근과, 완전 대체 방식을 도입하는 방법 두 가지를 내세웠다.

만약 현 행위별 수가제를 전면 대체하는 지불제도를 적용한다면, 급격한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따라서 행위별 수가제를 전제로 한 '단계적인 접근 방식'이 제안됐다.

행위별 수가제에 근거한 유형별 환산지수 계약 방식은 그대로 유지하되, '성과평가(P4P)' 및 행위별 수가제 외에 '대안적인 지불제도' 도입으로 다변화를 모색하는 방안이다.

연구팀은 "행위별 수가제 적용은 현재와 같이 유형별 환산지수를 적용하되 재정의 지속가능성 관점을 보다 강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적용하지 않았던 상대가치 총점 변동분을 재정 중립 관점에서 조정하는 기전을 추가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성과평가는 요양기관에 의무 적용을 원칙으로 하며, 현재 시행되고 있는 요양급여비용 가감지급 사업의 내용과 범위를 보다 확장할 수 있다.

또한 성과평가는 의무 적용이지만, 대안적 지불제도의 도입은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경우 성과평가를 면제하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한다.

반면 '가치기반 지불제도'의 전면 도입의 시나리오도 인상적이다. 행위별 수가제+성과평가 및 대안적 지불제도 적용과는 별도로,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대체하는 방안이다. 전통적 지불제도와 대비되는 낮은 가치의 의료 제공을 차단하기 위한 신규 유형의 지불제도다.

가치기반 지불제도는 진료연계 및 조정, 의료의 질 강화, 재정에 대한 공급자 책임성 강화(공급자 위험분담)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개별 목표 달성을 위한 분절적인 형태의 부가 방식 지불제도와는 차이가 있다.

가치기반 지불제도는 '에피소드 기반 묶음지불제도'와 '인구 기반 묶음지불제도'를 참고할 수 있다. 보험자 관점에서 묶음지불제도는 공급자의 재정적 위험 부담을 부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공급자는 의료의 질 관련 요건을 충족해야만 비용을 지급받을 수 있는데, 묶음 범위 외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공급자들이 추가적인 재정 부담을 해야 한다. 더불어 의료의 질 개선 목적으로 절감된 예산으로 보상하며, 재정적 위험부담을 공유함으로써 보험자의 재정 위험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

에피소드 기반 묶음지불제도는 임상진료지침을 토대로 진단 및 치료서비스와 대상 환자를 하나의 단위로 묶어 보상하는 방식이다. 진료량이 많거나 고비용이면서, 진료 간 변이가 큰 영역에 적용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인구 기반 묶음지불제도의 보상 방식은 공급자 네트워크에 등록된 환자를 대상으로 하며 공급자 집단이 제공한 진료 활동을 포괄한다. 기존의 행위별 수가제를 기본으로 벤치마크 예산(목표 예산)이 포함된 형태다. 목표 예산 대비 실제 지출과의 차이 및 질 개선 여부 등을 근거로 추가 보상 및 환급이 결정된다.

연구팀은 제도 개편에 앞서 정책적인 정비도 필수적이라고 꼽았다.

연구팀은 "재정 관리 측면에서 상대가치점수와 환산지수는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상대가치 제도 운영을 건강보험시사평가원이 담당하는 이원화된 체계에서는 재정 관리 효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보험자에게 관리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보다 타당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이어 연구팀은 "지속적인 심사 물량 증가로 심사 방식의 전환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재정 관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심사체계 개편으로 지출 통제의 영향을 감안할 때, 공급자 위험분담 중심의 제도 개편 의제는 보험자 주도 하에 추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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