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분만' 분야의 인프라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면책과 손해배상금액 상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또 정부에서 '산과' 분야를 필수분야로 지정했지만 관련 의사 확보를 위한 의대정원 증원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임원진은 20일 서울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제18차 추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은 의견을 역설했다.
김재유 회장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이 완화되고 수가인상이 돼야 한다.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 중 발생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한 소송 위험을 두려워해 분만을 포기하고 있다. 이는 분만 인프라 붕괴로 이어지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한 보호책이 필수적"이라며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는 인력만 늘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일례로, 일본 정부의 경우 필수의료 기피 원인으로 꼽히는 의료소송을 정부가 지원하고 젊은 의사들이 결혼, 출산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근무 구조를 구축했다"고 피력했다.
또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서 '불가항력적'이라는 의미가 불명확한데, 의사회 입장에서는 의사면허증을 받을 때 오진과 실수에 대한 것도 진료의 한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진료 당시에 의사가 판단했던 주관적 내용이 나중에 결과가 안 좋다고 해서 잘못 판단했다고 사법적 판단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누구나 주관이 다르고, 의사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서 더 좋은 것을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권한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회는 분만시 의료사고에 대한 가이드라인 설정의 필요성을 지난해부터 주장해왔다. 이 가이드라인에 대해 김재유 회장은 "의사가 진료함에 있어서 정말 하지 말아야 되고,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서로 협의하에 정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면책을 하자는 그런 의미"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무과실 분만사고에 대한 보상금을 상향하고 국가책임제로 할 것을 강조했다. 현재는 최대 3000만원으로, 최근 손해배상 금액이 10억원대를 넘어서고 있는 만큼 현실을 반영한 10억원으로 대폭 상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원 충당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 투입되는 연간 15조의 예산 중 0.1% 정도를 사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오상윤 부회장은 분만사고에 대한 사법리스크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놓으며, 향후 젊은 세대는 더욱 이러한 부담을 감수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개선점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끌어내지 못하면 분만 인프라의 붕괴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 부회장은 "언론이나 정부, 정치인들이 유독 관심이 있는 부분은 필수의료, 특히 분만 인프라로, 산과쪽을 필수의료로 지정했다. 그런데 분만병원들은 계속 일정 속도로 폐업하고 있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는 할 때까지 열심히 일할 수 있지만, 젊은 의사들이 이러한 의료사고 리스크를 안고 분만 분야에 남을까, 생각해보면 안할 것 같다. 이렇게 당사자들이 현재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외쳐도 국민들이 심각하게 안 받아들여지니까, 회의감조차 든다"고 했다.
또 "이 모든 것들을 의대정원 증원으로 해결할 수 있나"라고 반문하면서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은 도무지 그렇게 못 느낀다. 국민들이 와 닿게, 또는 정말 이 문제가 내 문제라고 느껴서 사회적 합의가 일어나야 한다. 필수 의료를 살리는 부분은 사회적 합의가 없으면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사회적 합의는 법적인 부분과 불가항력적인 분만사고에 대한 국가 배상"이라고 언급했다.
분당 차병원 산부인과에서 전공의 수련 중 사직했다고 밝힌 김태호 정책이사(사직 전공의)도 의료사고에 대한 불안감과 막대한 배상금이 필수 분야 선택을 주저하게 하는 가장 큰 허들로 지적했다.
김 정책이사는 "지금 장시간 의료대란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 사직 전공의를 떠나서 의사로서 향후 앞으로 하고 싶은 직군으로서 지금 사태가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 그런데 전공의들 입장이나 앞으로의 의사를 할 의대생도 마찬가지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본인들이 본업을 할 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런데 이를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의료사고와 이에 대한 과다한 배상책임"이라고 짚었다.
이어 "물론, 당사자들도 본업에 충실하고 환자들에게 성실하게 임해야 되지만 진짜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것까지 의사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너무 과하다. 향후에 이 분야에 계속 열심히 하고, 그럴 마음을 가진 친구들도 이 같은 부분을 언론에서 들으면 마음을 접는다는 얘기도 많이 한다"고 토로했다.
김미선 공보이사도 분만의를 사직한 이유에 대해 밝혔다. 김 공보이사는 "레지던트하고 산과 펠로우로 약 2년 정도 대학에 있었고, 산과임상조교수로 약 3년 정도 있었다. 그래서 태아 모체의학으로는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는데 분만병원에 취직을 해 보니, 대학에 있을때는 어느 정도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개원에 있으니까 직접 피부로 소송이나, 보호자 컴플레인 등을 직접적으로 겪다보니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아기도 있고 내 가정도 있는데 분만이 있는 날이면 모든 일들이 잘 마무리되기를 기도했었다. 하지만 1년 전쯤 그만뒀다. 너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무과실 분만사고 보상액을 10억원으로 상향하고, 감옥에 안 보내고,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의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과되면 다시 분만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직선제 산의회)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간선제 산의회)의 통합에 대한 진전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김재유 회장은 "산부인과 발전을 위해 두 의사회의 통합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해 대한의사협회 중재로 통합 논의가 진행됐지만 간선제 산의회의 비상식적 조건 제시로 통합이 이뤄지지 못한채 지난해 10월 간선제 산의회 추계학술대회 기자간담회에서 사전 상의 없이 갑작스럽게 두 의사회 통합 추진 TFT 구성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직선제 산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통합을 위한 진정성을 보이려면 본 의사회 제안을 즉각 수용할 것을 요청했고 올해 2월 두 산의회는 통합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합위원회의 신속한 구성을 위해 각 의사회에 합의 내용을 전달하고 추가 위원의 위촉을 요청했지만 아직 진전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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