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혈우병 A', '맞춤형 치료'로 가기엔 급여가 답보 상태

불충분한 용량 급여 기준, 적절한 예방요법 치료 어려운 환경 지속
8인자 제제 급여 확대 시, 환자 치료 환경 개선 및 의료·사회적 비용 감소 효과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3-04-24 06:06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혈우병'과 관련한 치료제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반대로 국내 급여는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가장 시급한 부분은 적절한 '예방요법'을 위한 용량의 증가다.

예방요법은 혈중 응고인자를 유지하며 출혈 위험을 줄이는 혈우병의 표준 치료요법이지만, 국내에서는 허가 사항 대비 불충분한 용량으로 급여 기준이 설정돼 있다.

혈우병 환자는 개개인의 출혈 양상, 신체활동의 정도나 시간, 체내 응고인자 활성도 수준, 약물동력(pharmacokinetics, PK)이 다르다. 

따라서 개인 PK 측정 결과와 환자의 생활 패턴 등의 특성을 고려해 개인 맞춤형 예방요법을 시행하는 것이 전 세계적인 흐름이자 표준이다.

그러나 국내 제한된 급여 기준으로는 개인 맞춤형 치료를 전혀 할 수 없다.

의사들은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맞춤형 치료를 할 수 있을 만큼 급여가 확대된다면, 의료·사회적 비용의 감소 효과도 클 것이라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아주 오래도록 국내 혈우병 치료는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 수준이다.

이제 정부가 움직여야 한다.

◆ 혈우병에서 '예방요법'의 중요성

혈우병은 X염색체에 위치한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혈액 내 응고인자가 부족하게 돼 발생하는 대표적인 출혈성 질환이다.

전체 환자 중 혈액응고 8인자가 결핍된 혈우병 A 환자가 약 70%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2019년 기준 국내 혈우병 A 환자는 1,700여 명, 혈우병 B 환자는 400여 명이다.

혈우병은 응고인자 활성도에 따라 중증도가 구분된다. 국내 등록된 혈우병 A 환자 중 혈중 혈액응고 8인자가 1% 미만인 중증(severe) 환자 비율은 70% 이상에 달한다.

혈우병 치료는 혈중 응고인자 수준을 목표치 이상(1% 이상)으로 유지함으로써 출혈 위험을 줄이는 일상적 '예방요법(prophylaxis)'과 출혈 시 지혈을 위해 응고인자를 투여하는 출혈 시 '보충요법(on-demand)'이 있다.

이 중 주기적으로 혈액응고인자를 투여하는 예방요법은 중증 혈우병 환자를 중등도 환자 수준으로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혈우병의 대표적 합병증인 관절병증과 자연출혈을 예방한다.

현재 세계혈우연맹(World Federation of Hemophilia, WFH)은 예방요법을 표준 치료법으로 권고하고 있다.

2020년 WFH 가이드라인에서는 예방요법의 목적을 혈우병 환자가 비환자군과 비슷한 수준의 신체 활동과 사회 활동을 수행하는 데 있다고 정의했다. 그리고 목표 체내 응고인자 활성도는 개인의 필요에 따라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PK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을 실시할 경우, 연간 출혈률이 뚜렷하게 감소했다.

◆ 허가 사항에 크게 못 미치는 '급여 기준'
 

국내 혈우병 A 치료 시장에는 표준반감기 응고인자 제제와, 반감기 연장 응고인자 제제가 시판돼 사용되고 있다 .

이러한 8인자 제제들은 예방요법, 출혈 시 보충요법, 수술 전후 관리에 임상적 유용성이 확인됐다. 글로벌 가이드라인에 따라 PK 모니터링을 기반으로 한 맞춤형 예방요법이 가능한 약제들이다.

이 약제들은 글로벌 임상을 통해 반감기에 따라 주 2-4회 정맥 투여해, 효과적으로 예방요법 치료를 시행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처럼 8인자 제제들은 국내에서 많은 혈우병 A 환자의 치료에 사용돼 왔지만, 아직까지 예방요법에 대한 급여는 제한적이다. 외래 환자 치료 시 적용되고 있는 급여 용량이 예방요법을 위한 허가 사항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2007년에 허가된 한국다케다제약의 표준반감기 응고인자 제제 '애드베이트주'가 있다.

애드베이트는 중증 혈우병 A 환자들의 장기적 출혈 예방을 위해 체중 1kg당 20~40IU의 제 8인자를 격일 간격으로 1주에 3-4회 투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애드베이트주는 외래 환자에서 1회 내원 시 최대 5회분(중증 환자는 6회분)까지, 매 4주 총 10회분(중증 환자는 12회분)까지 보험 급여가 인정된다. 급여 적용되는 1회 투여용량(1회분)은 20-25IU/kg다. 증등도(moderate) 이상 출혈 환자에서는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최대 30IU/kg까지 급여가 된다. 

의사들은 이 기준이 출혈 예방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2018년에 허가된 반감기 응고인자 연장 제제 '애디노베이트주'의 경우도 비슷했다. 애디노베이트는 표준반감기 제제 대비 같은 용량을 투여하면 더 긴 출혈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다. 다만 이 역시 현 급여 기준이 허가 사항을 따라가지 못했다.

애디노베이트주를 일상적 예방요법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12세 이상 청소년 및 성인에서 체중 1kg당 40-50IU를 주 2회 투여해야 한다. 12세 미만 소아의 경우 체중 1kg당 55IU를 주 2회 투여하고, 체중 1kg당 최대 70IU까지 투여할 수 있다.

하지만 급여 기준에 의하면 애디노베이트는 1회 투여용량(1회분)이 20-25IU/kg이며, 증등도 이상 출혈 환자에서는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최대 30IU/kg까지다. 이는 허가 용량의 1/2 수준에 불과했다.

◆ 이제 한 발자국, 혈우병 맞춤형 치료에 따라가야
 

최근 혈우병 치료 환경에는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A형 혈우병 비항체 환자도 JW중외제약의 '헴리브라(에미시주맙)'를 급여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헴리브라는 지난 2019년 항체 보유 혈우병 A 환자 또는 항체를 보유하지 않은 중증 혈우병 A 환자의 예방요법 약제로 국내 허가를 받았다. 다만 출혈 시 억제 또는 수술 전후 관리 목적으로 사용은 불가하다.

헴리브라는 1~4주마다 1회 피하주사 투여로 예방요법을 시행할 수 있도록 개발된 단일클론항체 비응고인자(non-factor) 약제다.

이전까지 헴리브라는 오직 항체를 보유한 혈우병 A 환자에게만 허가 사항 용법 용량에 따라 급여 투여가 가능했다.

그런데 한국혈우재단의 '2019 혈우재단백서'에 따르면 국내 혈우병A 환자 1,746명 중 대부분인 91%(1,589명)가 비항체 환자였다. 이에 따라 지난 2022년 10월 국정감사에서는 혈우병 A 비항체 환자에서 헴리브라 급여화를 촉구하는 논의가 이어졌다.

덕분에 지난 2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헴리브라는 비항체 환자를 대상으로 급여 적정성을 인정받았다.

그렇지만 비응고인자 약제 급여 확대만으로는 혈우병 A 환자의 치료 환경 개선에 아쉬움이 남는다. 따라서 응고인자 제제의 급여 기준도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의사들은 에미시주맙 투여로 예방요법을 시행 중인 환자에서 출혈이 발생한 경우, 8인자 제제 추가 투여가 동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헴리브라는 혈우병 치료제 중에서도 항체(내성) 생성 위험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영국에서 진행된 연구에 의하면, 과거 항체가 있었던 혈우병 A 환자들이 비응고인자 제제 투여 시 8인자 항체가 재생성될 우려가 제기됐다. (4/85, 4.7%)

이런 환자들의 경우 8인자 치료에 반응하지 않게 되므로, 출혈 또는 수술 전후 관리에서 비응고인자 제제보다 고가 약제인 우회인자 약제 투여가 요구된다.

또한 2023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다양한 수준의 신체 활동을 동반한 혈우병 A 환자에서 8인자 제제로 맞춤형 예방요법을 할 시 에미시주맙 예방요법 대비 출혈 위험도가 낮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이는 다시 말해, 다양한 치료제를 환자의 개개인의 상태에 맞게 적절하게 사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의료진에 판단에 따라 허가 사항에 맞는 용법 용량으로 예방요법을 시행할 수 있다면, 혈우병 환자의 삶의 질 개선 뿐만 아니라 신체활동이 증가한다. 환자마다 신체 활동 수준은 상이하나, 특히 8인자 제제는 투여 직후 높은 혈중 8인자 활성도를 기대할 수 있다.

결국 8인자 제제의 급여 확대는 전반적인 의료비용 및 사회적 비용 감소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지속되는 혈우병 8인자 제제의 급여 확대 요구와 관련해 심평원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혈우병 A 환자의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용량 증가가 필요한 상황에서, 관련 학회는 여러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디파나뉴스가 문의한 결과, 심평원은 8인자 제제 급여 확대 검토를 끝마쳤으며 보건복지부에 결과 보고를 완료한 상태였다. 세부 내용은 복지부에서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4월 7일 서울에서 열린 2023 동아시아 혈우병 포럼(East Asia Hemophilia Forum, EAHF)에서 동아시아 혈우병 치료 현황 세션의 좌장을 맡은 독일 비반테스병원 로버트 클램로스 교수(Dr.Klamroth)는 "일본, 대만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예방요법에 부족한 용량으로 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며, "한국의 혈우병 환자들이 글로벌 표준 치료인 응고인자 예방요법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 기준에 준하는 급여가 적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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