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한 축으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준비 중이지만, 의료현장 반응은 냉랭한 모습이다. 정부가 정한 건강보험 수가 아래서 진료할 수밖에 없는 국내 의료체계에선 당연히 필요한 법이지만 특례라는 명칭이 들어갔다는 점부터, 담고 있는 내용까지 '필수의료 살리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의료배상공제조합은 10일 합리적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방향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계 분명한 의료분쟁 조정중재 제도…의료사고처리특례법 불가피
토론회 첫 발제에 나선 전성훈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는 의료분쟁 현황과 중재제도 문제점을 조명하며 의료사고처리특례법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 변호사는 의료분쟁에서 조정중재 제도를 통한 분쟁 해결에는 한계가 분명해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먼저 당사자간 자율적 의사에 의한 해결이라는 조정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 자동개시 사건을 문제로 지목했다. 조정 결과에 당사자 누구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낭비되는 절차에 불과하다는 것.
이는 환자 측에서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의료감정을 하는 효과만 낳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소송에서 감정을 할 경우 일반적 사건에도 100만원 정도가 소요되나, 자동개시로 인한 조정의 경우 신청액 1억원에 감정 수수료는 16만2000원에 불과하다.
결국 자동개시는 염가의 감정 절차에 불과하고, 이는 법적 분쟁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전 변호사는 "해외의 경우 소송 감정료가 적어도 2배, 많으면 6~10배까지 들기도 한다"며 "과도하게 낮은 수수료 책정은 오히려 법적 분쟁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대한 낮은 신뢰도도 제도 실효성을 낮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재원이 역할을 증명하기 위해 사건 수와 조정 성립 건수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온정적이고 불공평한 결정을 내리고 '이 정도는 받아들여도 되지 않냐'고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전 변호사는 "가령 미용 분야에서 개인적 심미안 차이에 따라 생기는 분쟁에 대해 100만원 정도 책정하고 '100만원에서 끝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식의 요구들이 있어 현장에서 불만이 많다"며 "여러 문제와 이런 경향까지 더해져 중재원에 대한 의료계 신뢰 자체가 낮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악결과가 생겼을 때 '누가 해도 이렇게밖에 안 된다'는 말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누군가 잘못한 사람이 분명히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소송에 가지 않고 악수하고 끝내는 조정 중재는 좋은 취지지만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진료도 수가도 강제인 현실, 특례 아닌 당연…의료사고, 정부가 책임져야
이어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은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특례가 아닌 당연히 필요한 법이란 점을 되짚었다.
박 부회장은 국내 의료체계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에 의해 의료인은 건강보험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수가 역시 정부에 의해 정해진다.
이는 의료서비스를 강제로 저렴하게 만들었고 의료 접근성을 높인 반면, 의료기관은 박리다매로 수입을 보전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의료민형사책임이 가중되면서 위험도가 높은 소위 필수의료를 이탈하는 현상이 가속됐고, 정부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꺼냈다.
그러나 정부가 준비 중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수많은 단서조항을 달고 있다.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특례 적용 대상이 되며, 의료분쟁 조정절차에 응하지 않으면 적용에서 제외된다.
중상해의 경우 책임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대통령령에 의해 필수의료로 분류되지 않는다면 처벌된다. 사망의 경우 책임보험에 가입하고 필수의료로 분류된 분야일 경우 '임의적 감면'이 가능하다.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박 부회장은 ▲의료사고에서 사망사고를 제외하면 의미가 없다는 점 ▲조정절차 불응으로 특례법 적용을 제외한다면 강제적 조정이라는 모순적 제도라는 점 ▲처벌불원 의사 표시가 없으면 책임보험에 가입해도 형사처벌이 이뤄져 책임보험 강제 가입 의미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필수의료 보호라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부회장은 이런 식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이 아닌 의료사고 법적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간 의료기관을 강제로 건강보험에 동원해 국가 의무를 대행하게 한다면,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정한 필수의료만 대상으로 하는 특례법을 제정하려면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를 철폐하고 온전한 계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
아울러 정부가 주요 국가 의료과실 형사처벌 데이터에 근거해 국내 형사처벌 최소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의료계가 특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정부가 먼저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부회장은 "정부 의도가 진정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것이라면 의료계 동의 없이 양두구육식으로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추진하는 것은 중단해야 한다"며 "필수의료 살리기 정책이 아니라 필수의료 죽이기 정책이다. 필수의료 살리기라면 의료계와 합의 하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사고 면책법 발의 슬펐다…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어야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도 축사를 통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없는 의료체계가 정상이라는 점을 되짚었다.
이 의원은 최근 첫 법안으로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슬펐다고 언급했다. 개정안은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황에 불가피한 행위를 했고, 고의가 아니었으며 명백하게 피할 수 있는 과실이 없었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았을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의원은 "일부러 잘못하지 않았고, 중대한 과실도 없었는데 책임을 지지 않게 해줄게라는 말이 과연 명문법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아주 슬픈 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제가 발의했지만 이 법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법이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조계에서는 이런 특례를 지정하는 경우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며 "일반적 의료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는 나라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특례법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의료사고특례법을 비롯해 새로운 아젠다를 던지거나 제안할 때 국민이 받아들일 인식에 신경써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과거부터 의료사고나 의료 악결과·과실, 의료분쟁 등이 혼재돼 사용되며 의룡ㄴ에 과실이 있는 것처럼 잘못 인식됐고, 많은 오해를 불러온 단초였다는 이유에서다.
이 의원은 "국민이 들으시기에 의사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것임을, 진심이 가닿을 수 있도록 세밀한 부분까지 함께 애써주셨으면 하는 부탁을 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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