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신설했던 과거 재현될라…의사‧시설 등 제대로 갖춰야"

15일 전국의과대학 교수비상대책위원회 세미나
강원의대 강충효 교수 "1995년 신설 당시, 해부학은 방문 실습했다"
해부 교육 부족, 외과의사 부족사태 만들 수 있어

김원정 기자 (wjkim@medipana.com)2024-07-16 05:56

 
[메디파나뉴스 = 김원정 기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급격한 의대증원이 1990년대 의과대 신설로 어려움을 겪었던 의대 모습을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교수, 시설 등의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된 의대교육을 진행하지 못할 경우, 배출되는 의사 역량도 떨어질 수 있다. 이는 정부에서 강조하는 필수의료를 살리는 방향과는 달리 외과의사 부족사태를 만들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15일 전국의과대학 교수비상대책위원회 세미나가 '지역의료현장에서 바라본 필수의료패키지와 의대증원'을 주제로 강원의대 백송홀과 온라인에서 동시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3개의 심포지엄으로 구성했다.

이 중 세 번째 심포지엄에서 좌장을 맡은 강원의대 비대위원장 강충효 교수는 "강원대 의과대학은 2022년 의학교육 평가인증에서 전국 40개 의대 중 7개 대학교만 받는 6년제 인증을 받은 교육기관"이라며 의대교육 역량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러한 높은 의료교육 역량을 쌓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겪었다면서, 내년도부터 급격히 증원된 정원으로 의학교육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강충효 교수는 "1995년 강원의대가 신설됐을 당시에는 해부학을 방문 실습했다. 수련병원도 없어서 3-4학년은 위탁교육을 했던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17년 조건부 인증이라는 부끄러운 시절도 있었다. 때문에 의학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연자로 나선 손현준 충북의대 해부학과 교수는 '의학교육의 부실의 문제, 해부학 교육을 중심으로'를 발제로, 해부학 실습의 중요성과 이를 위해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는 데 큰 비용이 지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손현준 교수는 "일반 교육은 강의실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해부학 실습은 그렇지가 않다. 포르말린은 해부 실습용 시신(카데바)을 방부처리하기 위해 쓸 수밖에 없는 화학의약품이다. 그런데 이 약품이 학생들이 실습할 때 공기 중에 방출되기 때문에 맵기도 하고 발암물질이기도 해서 문제가 된다. 그래서 2016년 실습실을 개선했다. 공기를 아래쪽으로 뺄 수 있는 음압실습실을 만드는 데 약 3억원 이상이 투입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대 증원으로 학생이 200명이 된다면, 교수는 최소한 지금의 4배를 뽑아야 하지만 교수가 없어서 뽑을 수 없다. 이에 최소한을 잡으면 교수가 약 7명 정도, 조교는 4명이 돼야 한다. 그런데 가능할지 암담하다"고 내다봤다.

이어 "해부 실습용 시신은 1구에 6명이 가장 적당하다. 유명한 대학들은 해부학 실습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대학들은 해부학 실습을 컴퓨터 그래픽을 가지고 하는 경우도 있다"며 "결국 해부 교육의 부족은 외과의사 부족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석훈 교수(강원의대 교육학교실)는 '의학교육의 특성과 평가 인증의 관점으로'를 발제로 "의대를 더 줄이고 퀼리티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데 정부는 이와는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며 의료질 하락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강의실에서 주로 수업을 진행하는 일반대학과 달리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인만큼 배울 것이 많아서 한정된 시간에 밀도 있게 배워야 하며, 교수들 역시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석훈 교수는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 2학기 전공필수를 보면 6과목 15주, 주당 12시간, 총 180시간을 배운다. 반면, 의과대학 2학년 2학기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9시부터 저녁6시까지 시간표가 빼곡하다. 총 19주 동안 10과목 760시간을 배운다. 법과대학원과 비교하면 4배나 더 많은 전공필수과목을 배우게 된다"며 "그만큼 의대교육이 깊고 폭넓은 교육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설픈 의학지식으로는 환자도 못 구하고 본인도 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충북의대 비대위원장 채희복 교수는 맺은 말을 통해 "정부는 의대정원 2000명을 던졌다. 이에 직업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느꼈던 전공의, 의대생들이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 전공의들이 없는 병원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1조2000억원 이상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모든 병원들은 줄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며 정부의 2000명 의대증원을 고집으로 사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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