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영미 고려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채희복 충북의대 교수, 유임주 고려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사진=조후현 기자
[메디파나뉴스 = 조후현 기자] 정부 일방적 의대정원 2000명 증원에 의학교육 현장이 '누더기'가 됐다는 토로가 나온다. 일단 돌아오라는 일각 호소에도 의대생들은 '돌아가서 공부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란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24일 '의대 증원과 의학교육 문제'를 주제로 의료정책포럼을 열고 문제를 되짚었다.
이영미 고려의대 의학교육학교실 주임교수는 발제를 통해 무리한 의대 증원으로 30년간 노력해 번성한 의학교육 체계가 전쟁 후 폐허, 누더기처럼 변했다고 토로했다.
이 교수는 특히 의학교육 각 요소에 대한 상호신뢰가 무너진 점이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의학교육은 학생과 교수, 교육과정이란 3개 요소가 사회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이뤄지는데 이 관계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먼저 학생은 의대에서 지식만 배우는 게 아니라 교수란 롤 모델을 보고 상호작용하며 의사로서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데, 이번 사태를 겪으며 기성세대인 교수를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며 신뢰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학생과 사회 관계도 무너졌다. 지난해 의정 사태를 지나며 의사와 의대생이 악마화되면서다.
교육과정 역시 무너졌다. 교수도 교육 인프라도 부족해 의학교육에 걸맞은 다양한 교수 방법과 다면 평가를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렇게 무너진 의학교육 전문성과 정체성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여쭤보고 싶다. 30년에 걸쳐 의학교육 선진화를 이뤘는데 다 누더기가 됐다. 다시 예전 의학교육으로 바꾸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저는 답을 모르겠다"며 "의대생과 전공의는 의대 교육 코너스톤이자 키스톤인데, 학교와 병원에 없다.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의대정원 증원에 따라 추진 중인 장밋빛 시설·인력 확충계획도 공허한 주먹구구식이란 지적이 이어졌다.
채희복 충북의대 교수는 시설 확충이 주먹구구식이라고 지적했다. 의대정원이 49명에서 200명으로 늘어난 충북의대의 경우 의대 4호관 건물 신설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채 교수에 따르면 당초 학교 측은 설계가 완료됐고 공사를 시작한다고 했지만, 턴키 방식 설계가 잘못됐다며 설계부터 다시 하고 있다. 내년 2월까지 설계가 이뤄지고 공사기간은 줄여 오는 2028년 3월로 맞춘다고 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돼 신뢰가 어렵단 지적이다.
채 교수는 "처음부터 주먹구구식이라 교수들은 믿기 어렵다"며 "7층짜리 건물을 이렇게 빨리 지어도 되는지, 30도 정도 되는 경사면에다 지어주겠다는데 과연 기반은 튼튼한지 여러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고려의대 해부학교실 교수인 유임주 의협 학술이사는 기초의학 교수진 충원 계획은 의학교육 질을 저하시킬 것이란 점을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의학 교수인력 부족을 인접 학문 분야 교수로 대체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실제 유 이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도 의사 출신 기초의학 교수는 42% 수준으로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는 이미 부적절한 수준이란 설명이다. 의학교육은 맥락 기반 교육으로,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교육이 이뤄져야 학습 질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명 의대 증원이 계획대로 이뤄진다면 해부학 교수는 단순 비례로 계산할 때 82명이 필요하다. 의사 출신 기초의학 교수 비율 42%로도 교육 질을 담보할 수 없는데, 더 크게 무너져버리는 셈이다.
유 이사는 "당시 박민수 차관 말을 듣고 기초의학 교수와 전공자들은 싸했다. 말도 안 되는 말이기 때문"이라며 "솔직히 지금도 해부학 교육이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진 않다. 크게 구멍 안 내고 교육·실습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장재영 서울대병원 사직전공의, 강기범 의대협 전 비대위원장. 사진=조후현 기자
의료계 일각에선 의대생과 전공의 희생을 멈추고 '우선 돌아가야 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강경한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대병원 사직전공의인 장재영 대한의료정책학교 연구부장은 사태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것은 물론, 정부에 대한 젊은 의사 신뢰도 무너져 있어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란 시각을 공유했다.
장 연구부장은 먼저 부실 교육이 불가피한 25학번과 24학번 문제, 향후에도 이어질 24·25학번에 대한 유무형의 차별과 갈등에 대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1년 동안 현장을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정 거버넌스에 대한 불신이 깊게 뿌리내렸다는 점도 설명했다. 지난 2020년 9.4 의정합의는 물론, 정치 논리로 의대정원이 좌우된 1988년 졸업 정원제부터 1994년 신생의대 사건까지 학습하면서 상실감에 빠져 있다는 설명이다.
장 연구부장은 "이런 상태에서 정부가 약속하는 정책에 대해서, 특히 지역의료나 핵심의료에 대해 당사자인 의대생들이 결정할 수 있을지, 또 전공의로서 후배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지 물으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두 가지 문제가 굉장히 해결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전 비대위원장을 지낸 강기범 의협 정책이사는 일각 우려대로 '일단' 돌아갈 경우 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란 의대생 인식을 공유했다.
강 이사에 따르면 의대생들은 1년을 포기했지만 여전히 전원 복귀를 전제로 내년도 의대정원에 한정된 동결 제안만 나온 상황에서, 일단 돌아갈 경우 2027년부터 다시 1000명이든 2000명이든 증원을 강행한다면 어떤 대처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 경우 지난 1년마저 헛되이 사라진다는 우려다.
의대생과 전공의가 현장을 떠난 사이에도 강행되고 있는 정책도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국립의대를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넘기거나 전공의 빈자리를 PA로 대체하는 행태가 강행되면서 의대생들은 '돌아가서 실습하면 전공의 선생님이 아닌 PA를 따라 다니겠다'는 자조 섞인 농담도 한다는 설명이다.
강 이사는 "기존 전공의 포지션을 복지부 뜻대로 PA 간호사가 다 가져간다면 의사란 직역은 왜 필요한 것이냔 시각도 학생들 입장에선 큰 부분"이라며 "이런 것들은 그냥 들어가서 공부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보니 내부적으로도 사태는 종결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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